[김한수의 오마이갓] 박지원 “교황 방북 추진 중”... 북한 초청장 문제 해결됐나?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07.13 00:00


최근 결장협착증 수술을 받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일(현지 시각) 로마 제멜라병원 10층 발코니에서 처음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교황은 이날 환자들과 함께 삼종기도를 올렸다. /AP연합뉴스

‘교황 방북(訪北)’ 문제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후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꺼낸 이후 3년째입니다. 이번엔 박지원 국정원장과 박병석 국회의장이 등장했습니다. 박 국정원장은 지난 5일 전남 목포 산정동 성당에서 열린 준(準)대성당 지정 감사미사에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지요. 당시 미사엔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주한교황대사인 알프레드 슈에레브 대주교가 참석했습니다. 축사 형식이기는 했습니다만, 국가 정보기관장이 천주교 미사에 참석해 ‘교황 방북 추진’이란 화두를 꺼낸 것 자체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이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지난 9일(현지시각) 박병석 국회의장이 다시 ‘교황 방북’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바티칸을 방문해 교황청 2인자인 파롤린 국무원장을 만난 자리에서였지요. 박 의장측은 파롤린 국무원장이 “교황께서 북한에 가고 싶은 것은 확실하다. 문 대통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북한의 초청장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5일 전남 목포시 산정동 성당에서 열린 준대성전 지정 감사 미사에 참석해 "프란치스코 교황 평양 방문을 추진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북한 방문 이야기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벌써 3년째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외교적 언사를 걷어낸다면 ‘교황 방북’과 관련한 남북한과 교황청의 언급은 늘 같은 구조입니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쪽은 항상 한국입니다. 둘째, 북한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셋째, 교황청은 항상 ‘북한의 초청장이 먼저’라는 대답입니다. 이 구조는 3년째 도돌이표가 찍힌 노래처럼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를 방문 중인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 9일(현지 시각) 교황청을 방문, 교황청 국무원장인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과 만났다. 파롤린 추기경은 교황 방북과 관련해 "북한의 초청장이 오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시작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묻자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 오신다면 열렬히 환영하겠다”는 것이었지요. 다음달인 2018년 10월 교황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이 초청장을 보내도 좋겠느냐”고 묻자 교황은 “초청장이 오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며 “(북한이)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한다면, 엄청난 뉴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과 쿠바의 수교(修交)를 물밑에서 지원한 교황으로서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 지역인 남북한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다면 북한 방문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문제는 ‘교황 방북’을 둘러싼 모든 대화가 ‘가정법’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면’(문 대통령) ‘평양에 오신다면’(김 위원장) ‘초청장이 오면’(교황) 등 모두 공을 상대방에게 넘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여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북 문제에 대한 교황의 역할을 기대해왔습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당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를 특사로 파견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남북정상회담 중재를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습니다. 이후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자 그 다음엔 ‘교황 방북’으로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2018년 10월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2018년 11월 아르헨티나 방문 때 동포 간담회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남북평화를 위해 축복과 기도를 여러 번 보내 주셨고 여건이 되면 방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셨다”고 말했습니다. 최근에도 G7 참석차 유럽을 방문한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스페인 순방에서도 현지 추기경 등을 만나 같은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여기에 더해 박지원 국정원장과 박병석 국회의장이 ‘교황 방북’의 불씨를 다시 붙인 셈입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 의원은 1991년 북한 당국이 ‘요한 바오로2세 교황 방북 TF’를 꾸렸던 사실을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동구 사회주의권이 몰락하자 북한 정권은 교황 방북 이벤트를 통해 외교적 고립 탈피를 노렸다고 합니다. 한참 논의가 무르익던 중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렸다고 하지요. 바티칸에서 ‘진짜 신자를 보고 싶다’고 해서 수소문 끝에 한 할머니를 찾았는데 할머니는 소식을 듣자 “한 번 마음 속에 들어온 하느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김정일은 교황 초청 계획을 접었다고 합니다. 득(得)보다 실(失)이 훨씬 많다고 느꼈기 때문이겠지요.

3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떨까요? 당시만 해도 북한이 ‘고난의 행군’ 등 극심한 식량난을 겪기 전이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도 없었고요. 객관적으로 30년 전보다 북한이 교황을 초청할만큼 상황이 나아졌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럼에도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 바로 교황청이 누누이 강조한 ‘북한 초청장 먼저’입니다. 그래서 이번 박지원 국정원장의 ‘교황 방북 추진 중’이란 발언이 주목됩니다. 북한이 교황 초청장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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