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사랑 실천, 종교가 할 일이죠”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1.07.21 03:00

2021 만해대상 실천대상을 수상하는 보각 스님과 김하종 신부가 2021년 7월 15일 각자의 자리에서 손으로 하트를 그렸다. 보각 스님은 경기도 화성 자제공덕회(왼쪽), 김하종 신부는 경기도 성남 성남동성당 안나의집. / 오종찬 기자

2021년 만해실천대상은 ‘불교 사회복지의 선구자’ 보각(67) 스님(자제공덕회 이사장)과 IMF 이후 경기 성남 노숙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64) 신부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주 수상 통보를 받은 보각 스님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평생을 행동하고 실천하는 수행자로 사셨던 만해 스님을 기리는 이 큰 상을...”이라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앞으로도 잘 살겠다”고 했다. 스님은 1970년대 조계종 스님 중 처음으로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1985년부터 중앙승가대 사회복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2019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길러낸 제자가 1000여 명에 이른다. 전국의 불교 사회복지 시설 대표의 절반 이상이 그의 제자일 정도다.

2021 만해대상 실천대상을 수상하는 자제공덕회 이사장 보각 스님이 2021년 7월 15일 경기도 화성 자제공덕회에서 노비구니 덕삼 스님의 휠체어를 밀며 산책하고 있다. 보각 스님은 "저는 대학 중에 노인대학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며 "오래 살아야 들어올 수 있는 대학이니까"라고 말했다. / 오종찬 기자

보각 스님은 “저는 큰 복(福)은 없지만, 어려운 곳을 맡는 복은 있다”고 했다. 1990년대 중반 이른바 ‘소쩍새 마을 사건’이 터졌을 때 수습에 나선 것도 그였고, 현재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경기 화성의 종합복지시설 자제공덕회도 비구니 묘희 스님이 설립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중에 맡게 됐다. 보각 스님은 중앙승가대 교수로 재직한 30여 년간 거의 30억원을 소문 없이 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법문 잘하는 스님’으로 유명한 그는 법문 후 받은 사례금을 비롯해 교수 월급, 원고료, 인세 등을 차곡차곡 모아 필요한 곳에 기부한 것. 대신 주변 사람들에겐 ‘밥 한 번 사지 않는 짠 스님’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현재 자제공덕회 이사장으로서 요양원과 장애인 시설, 스님 노후 시설 등에 직원 포함 400명을 돌보고 있다. 2019년부터는 전남 강진 백련사 주지를 겸하고 있어 매주 강진과 화성을 오가고 있다.

2021 만해대상 실천대상을 수상하는 자제공덕회 이사장 보각 스님이 2021년 7월 15일 경기도 화성 자제공덕회에서 직원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그리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1990년 한국을 찾을 때부터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다’고 마음먹은 그는 IMF 직후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실직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안나의 집’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대접한 식사는 240만끼가 넘는다.

 

2021 만해대상 실천대상을 수상하는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가 2021년 7월 15일 불우이웃에게 나눌 도시락을 포장하고 있다. 도시락 포장을 맡은 봉사자들은 컨베이어 벨트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 오종찬 기자

그는 “IMF보다 지금의 코로나가 더 무섭다”고 했다. 20여 년을 노숙인과 지내는 동안 한국 사회의 변화도 목격했다. 처음 배식할 땐 30~40대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엔 70대 이상이 절반이다. 자녀가 있어도 연락이 끊기고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정부의 사회복지 안전망에서도 빠져버린 복지 사각지대가 늘고 있다는 이야기. 그는 요즘 하루 700명분 이상의 저녁 식사를 도시락으로 준비한다. 코로나로 다른 배식소가 문을 닫으면서 더 바빠져 코로나 이전보다 200명분이 더 늘었다. 그는 항상 웃으며 배식받는 사람들을 향해 “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외치며 손하트를 그리느라 바쁘다. 그의 지론은 “불쌍해서 밥 준다”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형제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이다. 지난 15일 ‘안나의 집’ 앞에서 배식을 기다리던 한 70대 남성은 “사랑합니다”라며 인사하고 지나가는 김 신부를 보며 혼잣말로 “좋은 일 많이 한다. 남의 나라 와서...”라고 말했다.

2021 만해대상 실천대상을 수상하는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가 2021년 7월 15일 오후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에게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보각 스님과 김하종 신부, 몸담은 종교는 다르지만 각각 ‘자비’와 ‘사랑’의 의미를 뭐라고 볼까. 보각 스님은 “말로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비는 무자비와 같다”라고 말했다. “자비의 뜻을 풀면 ‘(중생의) 고통을 없애고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나 말고 굶주린 개에게 공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루하루 남을 기쁘게 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삶이 있을까요?” 김하종 신부는 “사랑은, 자기 것을 지키려고 꽁꽁 감싸고 있던 팔을 푸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상처받고 희생해야 하는 일도 많아요. 하지만 그게 사랑입니다.” 김 신부는 만해 대상 수상을 계기로 인터넷으로 만해 한용운 선생에 대해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너무나 훌륭하신 분입니다. 나의 평화를 사회를 위해 실천하신 분이더군요. 만해 선생님과 같은 사랑과 희생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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