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월천댁 안어른 2
예를 들어 누가 볼일을 보러 자동차를 가지고 나가서 예정된 시간에 돌아오지 않으면 “우선 경찰에 연락해 봐라, 어디서 교통사고라도 나지 않았는지”라는 식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나간 사람이 되돌아 올 때까지 계속 불안 속에서 지냈다. ‘걱정도 팔자’라는 것이 그런 것인가 보다고 생각되리만큼. 자나 깨나 뭔가 부정적인 것이 생겨 시샘하며 덤벼들 것 같은 불안 속에서 평생을 지낸 분이다.
“내일이 작은댁에 할머니 입제다, 돈이라도 한 푼 보내고 전화라도 드려라.” 고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대신,
“얘야, 오늘이 음력으로 며칠이니” 하고 일부러 넌지시 묻는다.
“잠시요, 9월 초닷샛날입니다.” 이때 왜 묻는지를 알아차려야 하는데 내가 미처 못 알아차리면 이렇게 고쳐 말한다.
“9월 초이렛날은 그럼 이틀이 남았구나.” 하면 작은댁 입젯날과 돈 얼마를 송금하라는 뜻이다.
아들이나 딸이 고향집에 다녀가고 나면 무사히 되돌아갔다는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계속 안절부절 못한다.
한번은 한수네 가족이 파리로 1년간 연수를 떠난 적이 있는데, 파리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전화가 올 때까지 근 20여 시간을 정서 불안에 빠져 있어, 식사를 권해도,
“지금 밥을 먹게 생겼느냐? 걱정이 태산 같은데.”라며 손톱여물을 썰며 국제전화를 기다린 적도 있다.
“요새 비행기는 안전하며 파리에 도착해서도 바로 전화를 걸기가 어려우니까 잊어버리고 진지를 드시라.”고 권해도 막무가내였다.
매사가 이런 식으로 걱정이 많고 또 빙빙 돌려서 말을 하니까 듣는 사람이 알아서 빈틈없이 해석하고 필요한 조치를 적절히 취해야만 된다. 그래서 듣는 사람이 난감하기도 했다.
계모로부터 지독한 질시와 학대를 받은 탓에 어느 것 하나 세상일을
제대로 보는 법이 없어 부정적이고, 행여나 어긋나면 어쩔까? 잠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혹시 너무 평온해도 탈이다. 또 무슨 날벼락이 어디서 떨어지지는 않을까? 마른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지면 어쩔까 신병 훈련소에서 기합을 받지 않고 취침을 시키는 날엔, 자다가 언제 또 비상을 걸어 단체 기합을 줄지 몰라 전전긍긍한다고 하듯이, 월천댁은 그런 세월을 평생 동안 살았다. 무언인가가 계속 불안하고, 어디서 누군가가 엉뚱한 문제를 꼬투리로 삼아서 사람을 들볶고 대들 것만 같은 무서움 속에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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