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동 집
학서 어른이 할머니 나주 임 씨와 처음 살던 집은 앞각단 포중에 있었는데 1920년대의 큰 홍수 때 다 떠내려가고 다듬잇돌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그 다듬잇돌을 물려받아 어머님도 쓰셨고 우리도 보았는데, 어머님이 편찮아 서울에 와 계시는 동안 집을 비워 뒀더니 어떤 녀석이 차를 몰고 와서 장(醬) 항아리랑 그 다듬잇돌 등 골동품에 속하는 것들은 다 싣고 가버렸다고 한다.
그 홍수 뒤 학서 어른은 뒷각단에, 도로에서 내려오자면 서신기 댁, 임지호 댁, 김송천 댁 다음에 있는 집으로 옮겼는데, 이 집이 바로 우리들의 호적지인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 2327번지이다.
1935년(을해년) 3월에 경주시 건천읍 장승길 14-13 새봇도랑 옆의 200여 평 넘는 대지에다 안채 초가삼간, 아래채 초가 2간, 방앗간 채의 디귿 자 집을 새로 짓고 상량을 하였는데, 1960년대 초에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지붕을 슬레이트로 바꾸어서 살다가, 새집을 짓기 위해 2018년 3월 옛집을 뜯을 때 그 상량문(昭和 10년 乙亥 3월)이 발견되었다. 장승동 집을 지을 때 재벽을 바를 때 그 당시로선 최고급인 가는 모래에다
쌀풀을 버무려 발랐으며, 어머님이 그 풀을 쑤어 대느라 무척 고생했다.
장승동 집의 수명은 100년을 못 채운 83년(1935~2018)인 셈이고 새시절이 이제 막 시작할 참이다. 건천 기차 역사(驛舍)가 100년 만에 사라진 것을 보면 80~100년 주기의 흐름도 있는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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