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흩날리던 어느 해 정월, ‘사거리란 곳에서 한 담배참 거리는 훨씬 넘는 인천공장까지의 들판길을 걸으며 나는 콧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었다. 내 안주머니 속엔 사령장이 들어 있었다.

: 기원, : 33호봉, : 인천화약공장 연구과 근무

대학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쏟아져 나왔건만, 그들을 수용할 사회의 문은 극히 좁던 때라, 신문에 고등 룸펜이란 단어가 잦게 오르내리던 그 때, 그 시절, 한국화약 공채 1기생으로 선발이 됐던 것이다.

   

열두냥 짜리 인생 노래

https://youtu.be/Ter9hbBA5OQ

재가 공장장님께, 내가 누구라고 미처 신고도 드리기 전에 놀랍게도,

, 김군인가, 기다리고 있었다네, 춥지? 이리 난로 가까이 와서 몸을 녹이게.”

하는 인자하신 공장장님 앞에서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그 말씀은 비석에 새겨진 비명처럼 지금도 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얼떨결에 연구과 사무실에 가자 Titanium dioxide라 쓴 10쪽은 좋이 됨직한 원문 자료를 주며,

미스터 킴, 오늘 중으로 이 자료를 열두 번 읽도록 하시오.”라는 계장님의 지시가 나를 기다렸다. 산화티타늄이라...... 슬쩍 훑어보니 모르는 단어가 아는 단어보다 훨씬 더 많아 보였다. ‘아이구야, 무슨 재주로 생전 처음 보는 이 자료를 몇 시간 내에 열두 번씩 읽는단 말인가? 일곱 번은 읽겠구나하고 속으로 생각을 했다.

입사 첫날. 부임 신고가 채 끝나기 바쁘게 일복이란 것이 터지기 시작했다. 시간과 회수까지 지정되어 있는 업무지시가 미리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별수 없이 공장 앞에 있던 합숙소에서 그 자료를 혼자서 소화하느라 끙끙거리고 있을 때 하나뿐인 합숙소 라디오에서는 열두 냥 짜리 인생이 방송되고 있었다. 합숙소 직원들은 모두 라디오가 있는 방으로 모였나 보다. ‘앵해이 앵해야.’ 소리는 장지문 틈으로 어렴풋이 들려와 나를 계속 유혹하여 매우 난처하게 만들었으나, 난 일복도 복은 복이라 생각하고 자위했다.

 

초기 실험에서 흰색이 아닌 시뻘건 산화티타늄이 나오자, 한 친구는,

산소와 티타늄을 여공들로 하여금 핀셋으로 집어다가 풀로 붙이게 하는 게 낫겠다.”는 우스개 소리를 해서 폭소를 자아내게도 했다.

입사하던 해 봄, 미모사처럼 밤이면 잎사귀는 물론 줄기까지 오므리고 잠이 드는 자귀나무 한 그루를, 나는 연구과 화단에다 심었다. 6월이면 명주실 다발에 분홍 물을 들인 듯한, 향기 높은 꽃들이 만발하는 그 자귀나무가 있는 인천공장에나 한번 다녀올까?

인천화약공장에선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각종 뇌관과 폭약을 시험하는 폭음을 들어야 했고, 처음엔 더러 놀라기도 했으나, 몇 개월이 지나자 차츰 익숙해졌는데, 그러는 사이 반년쯤 뒤엔 인디언처럼 방바닥을 기어가는 곤충의 발소리를 감지해 낼 수 있음을 알고 스스로 내 귀를 의심하게까지 되었다. 모르는 사이 청각이 극도로 예민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청각의 발달은 악기 조율사 같은 사람이 아니면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작은 소리에 대한 나의 감각은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다.

부질없는 지난 생각에 잠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용기를 내자. ‘죽은 자식 불알을 만져본들무슨 소용이 있으랴. 큰 시련은 그만큼 큰 교훈을 남기고 떠나갔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자. 우리가 좌절하고 있을 때일수록 남들은 달리고 있을 터인즉. 새출발을 하여 다시 뛰어보자고 우리는 또 배갈을 마시며 손을 맞잡고 결연히 다짐을 했다.

전열을 정비한 우리는 새 힘과 용기를 뭉쳐, 민간 발전소와 정유공장 건설사업 계획 작성에 몰두했다. 마치 시냇가에 연못을 막는 개구쟁이 소년들처럼 일을 파고들었다. 정유공장에 대한 집념은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응어리였다. 스무남은 가지에 달하는 각종 계약서를 작성하고, 협의하고 수정하는 일을 불나게 했다. 글자 한 자, 그렇다! 글자 한 자가 수십 년 뒤에 회사에 미칠지도 모르는 결과를 미리 생각해야 한다 싶자, 문득 글자 한 자 때문에 야단 맞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건 참 값진 꾸지람이었구나.

 

금일 오후 2시까지 정부의 각종 승인절차를 도표로 작성 보고할 사

사장님께 올릴 보고서인데 시간 내에 끝내려면 점심을 거르는 수밖에 없었다. 155. 각종 승인절차를 도시한 보고서를 제출하니 또 업무 지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나 쫌 살리 주이소.’ 하며,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습니다만......”

말꼬리를 흐리는 나에게 돌아온 말은,

누가 점심 먹지 말라고 했어?”

라며 목청을 높이는 상사의 말에 나는 인간적인 멸시를 느껴, 심한 욕지기가 울컥 올라왔다.

나도 사람인데 떠그랄....”

하며 마구 대들고 싶었으나,

차라리 내가 돌이 되자싶어 가슴을 떨며 꾹 참았다.

 

사업 계획을 정부에서 검토하는 동안, 어떤 때는 연 나흘을 상공부 사무실에서 죽치고 살아야 했다. 정부의 승인서를 받지 않고는 아예 회사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지엄한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공부에서는 또 나름대로,

여기가 당신네 사무실이냐?”

는 식의 관리들의 심한 힐책을 받고 상공부 복도에 주저 물러앉기도 했었다. 이렇게 일에 빠진 시간이 끝도 없이 이어져, 무려 18개월 동안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하루만 쉬어 봤으면 싶었지만 이젠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이 강행군만 계속 됐다.

그럭저럭 정부의 인가도 받고 원줄거리 일이 마무리져 갈 무렵, 내 몸은 파김치처럼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귓속은 윙윙거리는 이명이 지배하고 어질어질하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죽고 싶어도 죽을 틈이 없었는데 이젠 고비를 넘겨서 그런지 완전히 소금에 절인 상추꼴이 되어 갔다. 체중은 막바지에 43킬로로 줄어들어 죽은 사람 입김에도 날아갈 판이었다.

입사 이후 휴가란 걸 가본 적이 있었던가? 휴가는커녕,

인륜은 알아야지 이놈아! 너희 회사 기획과장 자리가 얼마나 바쁜지 몰라도 이놈아! 그래 이놈아, 네 동생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네놈이 무슨 오래비......”

화가 머리끝까지 나신 어른들은 나를 집안에서 파문할 정도에 이르렀다.

 

덕수궁에 가본 것이 언제였더라?

입사이래 처음으로 휴가를, 그것도 특별휴가를 얻었다. 8 주일! 한두 주일도 아닌 무려 두 달간의 특별휴가!

김 과장, 좀 쉬도록 하지, 내가 너무 무심했나봐. 주말도 휴일도 없이 너무 무리를 시킨 것 같군. 어디 산이든 바다든, 자네 마음 내키는 대로 가서 회사일 다 잊고 푹 쉬었다 오게.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뒤에 돌아와.”

현암 회장님께서 내리신 봉투를 쥐어주시는 상사의 손을 잡자 뜨거운 무엇이 주루룩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40년 전에는 콧노래를 부르며 함박눈이 내리는 들판을 걸었다. 꿈과 희망과 더불어 허탈과 좌절도 겪었고, 또다시 용기를 내며 지나온 세월. 아흔 아홉 굽이도 넘는 고갯길을 굽돌아 오는 동안, 이제는 평범한 장년이 되고 말았나 보다. 귀밑에는 어느새 흰 서리가 앉았고.... 구름에 달 가듯이 세월이 흘렀나 보다. 일복 많고 집념 강한 어느 토목 기사의 얘기였던가?

열두 냥 짜리 인생의 주제곡 후렴이 아직도 내 귓전을 맴돈다.

앵해이 앵해야, 앵해이 앵해야...........”

 

월간 '다이나마이트' 문예 백일장 은상 수상작

 

 

'우리 식구들 논저-論著'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석사학위 논문-  (0) 2010.01.08
김동석 박사 학위 논문  (0) 2009.06.11
열두 냥짜리 인생-2  (0) 2009.05.24
열두 냥짜리 인생 -1  (0) 2009.05.23
김주석 저서- 만화 같은 인생 정만서 해학  (0) 2005.02.23
Posted by 사투리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