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이드 등불을 몰래 끄고 2
그 카바이드 등불에 힘이 약해지면, 허옇게 변한 통속의 석회(수)를 버리고 새 카바이드를 갈아 넣고 물을 부어 새로 불을 밝히곤 했는데, 어느 때인지는 잊었지만, 아마 중학생 때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안동 고모님 댁에 갔다가 밤중에 오줌을 누러 일어난 내가 보니, 등불이 2~3mm 정도로 오그라들어 아주 가물가물 죽어가고 있는 것이 무척이나 애처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 죽어가는 동물을 안락사라도 시키는 심정으로 불어 꺼버리고 말았다. 그토록 많은 고모님 댁 식구들이 다 잠든 한 밤중이었으니까, 그 불을 누가 언제 껐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전날 저녁에 고모님이 미처 새 카바이드를 갈아 넣지 못한 채 밤이 깊었고, 새벽밥을 지으려면 불씨가 따로 없었으니 그 카바이드 등불을 불씨로 쓰실 참이었던 모양이었던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나 보다.
새벽에 일어난 고모님이 불씨를 찾으니 흔적이 없다. 화가 치민 고모님께서 “누가 불을 껐느냐? 불이 있어야 아침을 안칠 참인데, 불씨가 없으니 이를 어쩐담? 이 첫새벽에 남의 집으로 불씨를 얻으러 갈 수도 없고.” 혀를 차며 화를 내는 소릴 들으니 간이 뜨끔하였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나는 “내가 그랬노라고, 죄송하다.”고 실토를 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미안하고 죄스러운지 말이다. 그 죄스러운 마음은 오래오래 사라질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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