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다리 사과 판매

 

 

   사과를 재배하는 과수원에 가면 까치가 파먹어 떨어진 사과를 비롯하여 병이 들어 반점이 생기면서 떨어진 사과 등 여러 가지 흠다리()가 있는 사과가 적잖은데, 이런 것들은 시장에 내다 팔지를 못하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면 입다심 즉 입매(음식을 간단하게 조금만 먹어 시장기를 면하는 일) 용으로 내놓곤 한다. 그런데 어느 해 비바람이 몹시 불어 이모님 댁의 사과가 엄청나게 많이 떨어졌는데, 그땐 사과 주스 공장 같은 것조차 없어 몽땅 썩혀 내버릴 판이었다. 마침 추석 대목이라 두 상자를 얻어서 짊어지고 건천 시장 입구의 늙은 당수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중학교 2학년 때니까 교복을 입은 채로 흠 있는 사과 팔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게 팔리지 않을 듯싶었지만 찾는 사람이 의외로 적지 않았다.

 

 

   차례 상을 차림에 있어 과실로서는 사과가 필수품인데 온전한 것은 값이 비싸니까 감히 살 수 없는 사람들이, 나무에서 떨어져 멍든 사과나 까치가 파먹어 구멍 난 사과를 아주 싼값에 구매하기 시작하는데, 내가 가지고 간 두 상자를 한 시간 사이에 다 팔고 말았으니 대목에 용돈이 톡톡히 생겼다. ‘아 보통 때 같으면 잘 거들떠보지도 않을 흠 있는 사과가 대목장에서는 제수용으로 팔릴 수도 있구나하는 걸 몸소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시장에 들고 간 사과가 비록 흠이 있다고는 했지만, 까치가 파먹었다고 해도 전체의 5분의 1을 넘지 않았고, 멍이 들거나 썩어 들어가도 4분의 1을 넘지 않았으며, 그보다 더 나쁜 것들은 일찌감치 집에서부터 골라내버린 참이었다. 온전한 과일을 통째로 차례 상에 놓으려니까 탈이지 상한 부분만 도려내 버리고 4등분해서 껍질을 깎아 상에 올린다면, 손님이 왔을 때 깎아내는 사과와 무엇이 다르겠느냐 말이다. 첫째 것에서 3, 둘째 것에서 2, 셋째 것에서 2쪽씩만 건진다 해도 7쪽이니 하나만 더 깎아 3쪽을 건지면 10쪽의 사과를 보기 좋게 한 접시에 소담스럽게 담을 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돈이 모자라면 머리를 써야 하는 것이거늘. 깎은 사과의 갈변(褐變)을 막으려면 연한 소금물에 살짝 담갔다 꺼내면 그만인 것을.

 

 

   내가 사과를 펼쳐놓고 앉아서 팔았던 건천 시장 입구의 그 수백 년 된 늙은 당산나무는 건천의 상징이었는데, 어느 해 태풍에 쓰러진 모양이라 그루터기마저 말끔히 치워버렸나 본데, 지나면서 언뜻 보니까 그 나무가 섰던 자리가 휑뎅그렁하여 보기에 참 민망하던데 누가 거기 느티나무 묘목 한 그루를 갖다 심어주면 참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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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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