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할아버지 운호(雲湖) 어른
큰할아버지는 1872(임신)년 음력 4월 5일, 아버지 진해 할아버지와 달성 서 씨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자를 운호(雲湖)라 하며, 진해시에서 출생하여, 1919년 3월 12일까지 경화동 645번지에서 살다가, 1924년 1월 28일까지는 창원군 내서면 석전리 152에서, 그 뒤 다시 경화동 334 등 진해와 창원의 여러 곳을 옮겨가며 살았는 바, 어린 나이인 13살 때 아버님인 진해 할아버지를 여읜 결과로 짐작 된다. 운호 어른은 노동일과 더불어 염전에서 일하기도 하였다. 키가 대단히 컸고 몸집이 매우 우람하여 ‘장군’이라고 불리었으며, 힘이 장사인데 얼굴은 긴 편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구레나룻이 대단히 무성하였다. 63세 때인 1934년 음력 9월 19일 진해시 니동리 392번지에서 ‘새끼발가락이 성을 내는 단’이란 병으로 단지 며칠간 고생한 끝에 타계하였으며, 운호 어른의 용모는 포항에 사는 4촌 동생 남석과 흡사하였다 한다.
운호 어른은 진해-마산 간을 왕래하며 등짐장사도 하였는데, 하루는 마산에서 진해로 넘어오는 고갯길에서 강도를 만났단다. 장에 갔던 사람 열댓 명이 함께 고개를 넘고 있었는데, 강도 3명이 앞을 가로막으며 모조리 그 자리에 엎드리기를 요구하였고, 산 위에도 몇 명의 패거리가 더 있는 듯하여 모조리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운호 어른은 남들이 ‘장군’이라고 부르는 장사였기에 담력도 대단해서 고개를 살며시 들고 유심히 살펴보니, 산 위에 있는 것은 소나무에다 흰옷을 걸쳐둔 것일 뿐
도적은 3명에 불과하였으므로 용기를 내어 지게 작대기로 세 놈의 강도를 때려 쫓고 무사히 귀가하였다. 이 얘기는 월천 어른에게서 내가 직접 들었으며, 외손인 안행구한테도 다시 들은 적이 있다.
운호 어른은 전주 이 씨와 결혼하여 남매를 두었는데 맏이인 아들이 만주로 간 휘 복문(福文)이고 2살 터울로 둔 딸이 사숙(思淑)이다. 운호 어른은 나주 정 씨 순이(順伊)와 재혼하여 세 아들을 두었다. 맏이가 휘 학봉(鶴鳳)이고 7살 터울로 아명이 ‘또뱅이’인 휘 우봉(又鳳), 그리고 막내로 아명이 ‘또술이’인 휘 학술(學述)을 5살 터울로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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