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진해(鎭海) 어른
증조부의 휘(諱)는 기운(奇雲)으로 경남 진해시에 살았기에 앞으로 ‘진해 어른’ 또 그 어른을 정점으로 하는 우리 가족 전체를 ‘진해 어른 후손’이라 부르기로 한다. 월천 어른의 말씀에 따르면 “고조부와 증조부 때는 진해 통제부 자리인 매랭이재 밑에 살았으며 운호(雲湖. 큰할아버지) 어른이 살던 집에 불이 나서 족보가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일본과 합방이 되고 나서 매랭이재 밑에서 경화동으로 쫓겨났다. 월천 어른은 경화동에서 태어났으며 우봉 숙부는 창원에서, 학술 숙부는 덕산동에서 출생하였다. 한편 학술 어른 말로는 선조들이 진해에 살기 전에는 거제도에 살았으리라는 추측이다.
진해 할아버지께서는 1884년 3월 21일(음력) 경남 진해시 경화동 645번지에서 별세하였다. 그때만 해도 살림에 여유가 있었던지, 진해시 해군 통제부 뒷산에 상석(床石)을 설치한 묘를 썼다고 하나 위치를 확인할 길이 없다. 거제 출신인 달성 서 씨와의 사이에 휘 수용(守用)과 휘 소용(小用) 두 아들을 12살 터울로 두었다. 증조모 달성 서 씨는 ‘땅을 물고 다닐’ 정도로 허리가 굽었으며, 고부간에 의가 좋지 못해 때로는 달포씩 시누이 댁에 머물기도 하였다 한다.
증조모 달성 서 씨는 며느리인 나주 정 씨가 시집갔을 때 살아 있었고, 손자인 우봉을 업고서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활량, 활량, 김 활량. 활량, 활량, 김 활량!” 하며 어르기도 했다. 월천 어른 말씀으로는 꼬부랑 할머니가 87세에 별세하였다고 한다.
진해 할아버지의 누이 되는 분은 진해시 웅천 백일에 있는 순흥 안 씨 댁으로 출가했는데, 웅천에는 그 3세인 길구, 중구, 의구, 행구, 봉구 등과 그 4세인 길구 아래 명출, 의구 아래 명의, 행구 아래 명석 등등 여러 외손들이 경남 진해와 창원 등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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