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소원 귀마개

 

   다른 애들이 집에서 토끼를 기르는 것이 나는 무척 부러웠다. 해서 아버지 월천 어른이 어디서 얼큰하게 취해서 들어오는 날을 골라 은근슬쩍 토끼 한 마리만 사 달라고 애걸을 해 보곤 했지만 결코 들어 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집에서 암토끼 한 마리를 기르기 시작해서, 그게 암내를 냈을 때는 내가 토끼 상자를 짊어지고 건천까지 접을 붙이러 가곤 했는데, 다른 아이들은 토끼 상자를 짊어진 그런 내가 아주 신기한 모양이었다. 나중에는 우리도 수놈을 한 마리 구해서 여러 마리를 함께 기르게 되었다.

 

 

   나는 겨울이 오면 귓바퀴를 비롯해서 손가락과 발가락이 잘 얼었다. 귀에 걸린 동상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못했는데, 왜 그땐 귀마개 같은 것도 만들어 쓰지 못했을까? 손발이나 귀에 동상이 걸리는 것쯤은 부모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동상은 한 해 겨울에 걸리면 다음 겨울에도 어김없이 걸리는 연중 행사였기에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겨울이면 귀가 얼어 푸르죽죽하게 변하곤 했다. 체질이 남매간에 비슷해서 그런지 누이동생 권실이도 동상에 잘 걸렸지만 아우인 성촌이나 가평이가 동상에 걸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 벗겨 놓은 토끼털로 귀마개를 하나 만들고 싶어도 그걸 만들 재간이 없었다. 토끼털을 돌돌 말면 귀마개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해 보니까 토끼 가죽에 붙은 두꺼운 지방질 때문에 너무도 뻣뻣하여 쉽게 말리질 않았고, 비록 좀 말렸다 할지라도 지름이 워낙 크게 말려서 귀에 맞는 귀마개로 쓸 크기를 몇 배는 넘게 말리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디선가 토끼 가죽을 짚으로 문지르면 지방질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해서 혼자서 열심히 시도해 봤지만 나로서는 허탕만 쳤을 뿐이다. 결국 토끼가죽의 지방질 제거 방법을 알지 못해서 토끼털을 두고도 귀마개를 만들지 못하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도 해마다 귓바퀴는 얼어서 시퍼렇다가 나중에는 쭈글쭈글해지면서 진물이 질질 흐르곤 했는데, 그걸 그냥 참고 견디며, 그럭저럭 영부영하느라 평생토록 토끼털 귀마개를 가져 보지 못하다가 2016년에야 다 늙은 80영감이 되어 다이소란 가게에서 토끼털 귀마개를 하나 샀으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다. 그 귀마개를 착용해 보니 그럴 수 없이 포근하고 따뜻해서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구하지 못했을까? 누가 나를 위해 그걸 만들어 줄 사람 하나도 없었고, 겨울이면 귀가 어는 것쯤 당연한 것으로 여길 만큼 생각이 무디었으니까. 아버지에게 부탁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던 것을 누가 알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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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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