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잣집 자식 7

회고록 2019. 2. 11. 07:51

부잣집 자식 7

 

  경주에서 체육 경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허기가 졌는데, 배가 워낙 고프다 보니, ‘알마리 고개쯤에서 남의 집 담 너머의 떫은 감도 따먹고 채소밭에 자라는 무도 뽑아다 와싹와싹 씹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 떫디떫은 땡감이 무슨 맛이 있으며 목은 또 오죽이나 막혔으랴만 배가 고프다 보니 꿀맛 같았다. 떫은 감의 맛이 그러할진대 사과야 말해 뭐 하랴.

 

  가끔가다 능금밭집(과수원) 앞을 지나다 별 볼일 없이 잠깐 들를라치면 까치가 파먹었거나 낙과된 사과를 한 소쿠리 내다 주는 인심이 그땐 곳곳에 있었다. 칼로 대강 썩은 부분만 도려내고 껍질째 와작 깨물어 먹으면 한 자리에서 예닐곱 개는 거뜬히 해치울 수 있었다. 그때는 사과를 맛으로나 소화제로 먹는 것이 아니라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기에 입맛이 당기는 한 먹어치웠던 거다. 그런데 집에 와서 말을 하려고 숨을 들이쉬면 이가 곱아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지만 그땐 우선 배부터 채우는 것이 상책이었다.

 

  사과를 이가 시리도록 먹어 본 경험이 그 뒤로는 전혀 없다. 고성숲(황성공원)에 가서 체육대회를 할 때 부른 건천학교 응원가는:

고성숲 맑은 터에 건천 건아가, 던지는 이 몸뚱은 철석과 같다,

달려라 용마같이 힘차고 굳세게, 우워사사 나가자 건천 어린이.’

 

아래의 노래는 올림픽 마치곡에다 얹어서 부르곤 했다.

화랑의 핏줄을 다시 이은 건천 학교의 동무들아,

튼튼한 몸과 굳센 정신 있는 힘을 다하여서 싸워라,

씩씩한 선수 우렁찬 응원 이 넓은 싸움터를 울리면

앞으로 나아가 적진을 헤쳐 영예로운 월계관은 우리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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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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