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때 가장 위로되는 건 함께 울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
조선일보 2018-07-20 ]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 직접 겪은 소중한 인연과의 일화 수필집 '함께 울어주는 이' 펴내… "신자·사제들과 교감하려 썼어요"
책에는 칠순을 넘어선 노사제가 겪은 소중한 인연과 인간적 번민, 그 과정에서 피어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친절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이 주교는 평양에서 피란 와 고생하면서도 저녁이면 온 가족이 모여 만과(晩課·저녁 기도)를 올린 후에야 잠자리에 들던 가정의 모습, 고교 시절 1주일간 떠난 왜관 베네딕도수도원 피정에서 '여기가 천국'이라고 느낀 감동에 사제의 길을 선택한 청년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군종 신부로 생활하며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도 털어놓는다. "밤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죠. 그날도 그렇게 사제관으로 돌아오다가 성당에 들어가 성체(聖體)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 정말 힘듭니다' 호소했지요. 밤새 기도를 드리고 나올 무렵 '언제라도 힘들 때는 나에게 오너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전방 부대에서 전화가 왔다. '신자 몇 명이 모여 있으니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해달라'고. 그 일을 겪으며 이 주교는 그리스도인, 특히 사제들에게 외로움이란 참으로 의미 있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게 해주는 큰 선물이란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함께 울어주는 이'라는 제목은 일선 성당 주임사제 시절 일화에서 비롯됐다. 장기간 유럽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면서 동창 신부가 빈자리를 맡아줬다. 귀국해보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던 한 여성 신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그렇게 아내가 애원해도 성당에 나오지 않던 남편이 주일 미사에 나오고 예비 신자 교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비결이 '함께 울어주는 것'이었다. 여성 신자의 임종 때 동창 신부는 함께 울면서 정성껏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이 모습에 감동한 남편이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주교가 교포 사목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외로울 때면 성당 마당을 거닐며 묵주기도를 올렸다. 어느날 곁에서 서툰 한국말로 외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이 들렸다. 연로한 일본인 신부가 외로워하는 그를 위해 한국어를 배워 함께 기도를 올려준 것. 이 주교는 "그때 받은 위로는 잊을 수가 없다"며 "지금도 제 나름대로 함께 울어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새터민, 외국인 근로자들을 자주 만나 기도하고, 요양원을 찾아 임종을 앞둔 어르신들의 손도 잡아준다.
책에는 사할린에서 만난 교포 신 베드로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1942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할린의 일본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1945년 패전 후 일본 신부와 수녀가 모두 철수한 후에도 반세기 이상 혼자서 기도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 이 주교는 "과거 방북해 미사를 드릴 때면 손바닥이 아니라 옛날 식으로 성체를 혀로 받는 분들, 지금은 부르지 않는 옛날 라틴어 성가를 따라 부르는 분들이 있었다"며 "북한에도 신 베드로 할아버지처럼 신앙을 이어온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남북 관계에서 종교의 역할 역시 함께 울어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교가 되면 아무래도 약간의 거리감이 생겨요. 그래서 신자 그리고 사제들과 교감(交感),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썼습니다. 양극화, 비인간화로 삭막한 현대사회에서 '함께 울어준다'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사회가 맑아지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요?"
천주교 의정부교구장 이기헌(71) 주교가 최근 수필집 '함께 울어주는 이'(바오로딸)를 펴냈다. 엄숙한 분위기의 천주교계에서 현직 교구장이 성경 해설서나 전공 서적이 아닌 수필집을 낸 것은 이례적이다. 19일 의정부교구청에서 만난 이 주교는 "연휴 때면 고민이 '읽을까, 쓸까'일 정도로 글쓰기를 좋아한다"며 "평소 '사목적 수필'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책에는 칠순을 넘어선 노사제가 겪은 소중한 인연과 인간적 번민, 그 과정에서 피어난 사랑과 자비의 마음이 친절한 문장으로 펼쳐진다. 이 주교는 평양에서 피란 와 고생하면서도 저녁이면 온 가족이 모여 만과(晩課·저녁 기도)를 올린 후에야 잠자리에 들던 가정의 모습, 고교 시절 1주일간 떠난 왜관 베네딕도수도원 피정에서 '여기가 천국'이라고 느낀 감동에 사제의 길을 선택한 청년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군종 신부로 생활하며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도 털어놓는다. "밤마다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마시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죠. 그날도 그렇게 사제관으로 돌아오다가 성당에 들어가 성체(聖體) 앞에 무릎 꿇고 '예수님 정말 힘듭니다' 호소했지요. 밤새 기도를 드리고 나올 무렵 '언제라도 힘들 때는 나에게 오너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오니 전방 부대에서 전화가 왔다. '신자 몇 명이 모여 있으니 고해성사와 영성체를 해달라'고. 그 일을 겪으며 이 주교는 그리스도인, 특히 사제들에게 외로움이란 참으로 의미 있고, 그리스도에게 나아가게 해주는 큰 선물이란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함께 울어주는 이'라는 제목은 일선 성당 주임사제 시절 일화에서 비롯됐다. 장기간 유럽 성지순례를 떠나게 되면서 동창 신부가 빈자리를 맡아줬다. 귀국해보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 있었다. 건강이 좋지 않던 한 여성 신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생전에 그렇게 아내가 애원해도 성당에 나오지 않던 남편이 주일 미사에 나오고 예비 신자 교리 공부를 하고 있었다. 비결이 '함께 울어주는 것'이었다. 여성 신자의 임종 때 동창 신부는 함께 울면서 정성껏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이 모습에 감동한 남편이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주교가 교포 사목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때의 에피소드도 있다. 외로울 때면 성당 마당을 거닐며 묵주기도를 올렸다. 어느날 곁에서 서툰 한국말로 외는 '주님의 기도'와 '성모송'이 들렸다. 연로한 일본인 신부가 외로워하는 그를 위해 한국어를 배워 함께 기도를 올려준 것. 이 주교는 "그때 받은 위로는 잊을 수가 없다"며 "지금도 제 나름대로 함께 울어주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새터민, 외국인 근로자들을 자주 만나 기도하고, 요양원을 찾아 임종을 앞둔 어르신들의 손도 잡아준다.
책에는 사할린에서 만난 교포 신 베드로 할아버지 이야기가 나온다. 1942년 초등학교 4학년 때 사할린의 일본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그는 1945년 패전 후 일본 신부와 수녀가 모두 철수한 후에도 반세기 이상 혼자서 기도를 잊지 않고 살아왔다. 이 주교는 "과거 방북해 미사를 드릴 때면 손바닥이 아니라 옛날 식으로 성체를 혀로 받는 분들, 지금은 부르지 않는 옛날 라틴어 성가를 따라 부르는 분들이 있었다"며 "북한에도 신 베드로 할아버지처럼 신앙을 이어온 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으로 전개될 남북 관계에서 종교의 역할 역시 함께 울어주고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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