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30·40대가 '민족대표' 절반…
100년 전 '새 어른'이 등장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3/26/2019032603573.html
민족대표 33인 중 30·40대 16명… 어른스러웠고 참으로 당당해
남 원망·과거 잘잘못 뛰어넘어 100년 후 우린 얼마나 어른스럽나
최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자료를 읽다가 민족대표 33인의 나이를 확인하고 새삼 놀랐다. 알려진 대로 민족대표는 천도교 15명, 개신교 16명, 불교 2명이다. 최고령자는 천도교 측 이종훈(1856년생) 선생으로 1919년 3·1운동 당시 만 63세였다. '대표 중의 대표' 천도교 손병희 선생은 58세, 장로교 대표 길선주 목사 60세, 감리교 대표 이필주 목사 50세, 불교 대표 백용성 스님이 55세였다. 최연소자는 장로교 이갑성과 감리교 박희도·김창준으로 30세였다. 만해 한용운 스님이 40세, 각 종교를 뛰어다니며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했던 천도교의 최린도 41세였다. 전체적으로 60대 2명, 50대 15명, 40대 11명, 30대 5명이었다. 평균연령은 46.5세. 50~60대 인사들은 거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천도교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평균수명을 감안하더라도 '서른 살 민족대표'는 특별해 보인다.
이들이 처음부터 '민족대표'로 전면에 나서려 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 민족적으로 알려진 '대표급'도 아니었다. 당시 기록을 보면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는 이미 1~2년 전부터 민족대표를 물색했다. 애당초 1순위로 꼽은 영입 대상은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시절의 고관(高官)과 대신(大臣)들. 이들은 모두 머뭇거렸다. 의암 손병희 선생 측 기록에는 이완용을 접촉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주변에선 '이완용이 일제에 밀고할 것'이라며 모두 말렸다. 손병희는 의연했다. '매국노 이완용까지 독립을 원한다면 민족 모두가 독립을 원하는 것이 되지 않겠느냐'는 역발상이었다. 이런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민족대표 33인'은 당시 원로들이 거부하는 가운데 꾸려진 리스트다. 1919년 2월 초 동경 유학생들이 2·8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손병희는 "오늘날 우리나라에 무슨 정당이나 결사(結社)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종교단체뿐"이라며 종교연합을 통해 민족대표 구성을 결심했다. 그 결과 급히 만들어진 '민족대표'가 33인이다. 그렇게 100년 전, 세계 역사상 유례가 드문 종교 연합의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3·1운동은 새로운 민족대표, '어른'이 등장한 사건이다.
급하게 꾸려졌지만 당시 '젊은 어른'들은 충분히 어른스러웠고 당당했다. 옥고(獄苦)는 당연히 각오했기에 각 종교의 미래를 책임질 '더 젊은 세대'는 33인 명단에서 미리 뺐다. 당초 독립선언서 발표 장소로 탑골공원을 예정했지만 학생들이 모일 거라는 소식에 청년들에게 닥칠 불상사를 막기 위해 태화관으로 급히 장소를 바꾸었다. 민족대표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양보, 배려를 솔선수범했다. 종교의 차이는 독립이란 대의(大義) 앞에 아무 장애가 되지 않았다.
독립선언서는 당당했다. 망국(亡國)의 빌미를 제공한 조선왕조와 대한제국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다. 민족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조차 거부했던 기성세대에 대한 원망도 담지 않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도 바쁜 우리에게는 남을 원망할 여유가 없다. 우리는 지금의 잘못을 바로잡기에도 급해서, 과거의 잘잘못을 따질 여유도 없다"고 했다. 당당하게 세계 평화를 위해 조선 독립의 필요성을 외치는 선언서에 일제도 당황했다. 그래서 당시 일본 경찰과 사법부는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一刻)까지'라는 공약 삼장의 표현을 두고 "폭동을 선동한 것 아니냐"고 꼬투리 잡을 뿐이었다. 그렇게 1 00년 전 민족대표들은 전제왕조 시대와 결별하고 새 시대를 열고 어른이 됐다.
100년 전을 돌아보면 저절로 지금 우리를 살피고 되묻게 된다. 과거의 잘잘못에 스스로 발목 잡혀 있지는 않은가. 남을 원망할 만큼 여유가 있는가. 자기희생을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실천하고 있는가. 양보와 배려, 솔선수범하고 있는가. 무엇보다 100년 전 그들처럼 어른스러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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