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미꽃

창작 수필 2004. 12. 31. 07:33

할미꽃


김 주 석(사투리*)


아이들에게 가장 신명나는 놀이는 불장난일 텐데, 그걸 어찌 전자오락쯤과 비굔들 할까보냐. 짜릿하고 신나는 면에서야 당연히 불장난이 으뜸일 테지만 거긴 언제나 위험이 따르는 게 탈일 따름이거늘..... 그래서 아이놈의 불장난이 길어질라치면 꼭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었으니.....

어느 이른 봄날, 두메마을 뒷각단의 짚동 사이에 숨겨뒀던 성냥깍지로 호작질을 일삼다가 그만 짚더미에 불을 낸 나는 엉겁결에,

“엇 뜨거라, 이걸 어쩐다지?”

하다가 무조건 뒷등성이 너머로 줄행랑부터 치게 되었다. 헐레벌떡 오르막을 오를 때까지는 불을 냈다는 게 무척 큰일로 여겨졌으나, 등성이 너머 내리막길로 들어서자, 아동기(兒童期) 적의 빠른 관심이동(關心移動)의 발로로 내가 왜 뛰고 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끔 돼버렸다.

가쁜 숨을 고른 뒤 남향받이 묏등에 등을 기댄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하늘가에 맴도는 솔개를 하염없이 지켜보다가 깜박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노곤한 토끼잠에서 퍼뜩 눈을 뜨고 보니 무덤 가의 누렇게 뜬 잔디밭 사이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게 할미꽃이었다.

할미꽃은 어쩜, 저 언덕 너머 들판에서 지저귀는 종다리 소리를 듣고 피는가 보다. 보리밭 이랑에서 수직으로 날아오른 종다리가 잦은 날갯짓으로 이삼십 분씩 봄의 환희를 노래할 즈음이면, 어김없이 비로드처럼 보드랍고 윤기 흐르는 잔털에 덮인 할미꽃이 다소곳이 피는 곳이 내 고향 두메마을이다. 어디선가,

뒷동산의 할미꽃 꼬부라진 할미꽃

젊어서도 할미꽃 늙어서도 할미꽃,

천만 가지 꽃 중에 무슨 꽃이 못돼서

싹 날 때에 늙었나 호호백발 할미꽃,

이라는 동요만 들려와도 그리워지는 곳이 두고 온 고향이다. 거기선 할미꽃을 ‘족두리꽃’이라고도 부르는데......

그런데, 실수로 불을 낸 아이를 결코 야단치지 않던 게 또한 고향마을이다. 야단을 치기는커녕 오히려 떡시루를 안기는 게 선대들의 지혜였다. 아이들로서야 불을 낼 작정은 아니었지만, 일단 ‘불을 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겁에 질려 있음에 틀림없는데, 그 녀석을 잡아다가 혼찌검을 낼라치면, 아이의 정신이 살쭉 돌아버리지나 않을까 저허한 것이 선대들의 깊으신 배려였다. 따라서 나에게 꾸중대신 돌아온 것은 굵은 팥이 듬뿍 섞인 모둠시루떡이었다. 그걸 동접들과 나눠 먹고, 다시는 불장난을 하지 말라는 게 ‘사랑의 꾸중’이 담긴 시루떡이었다. 오늘날 도시에서 갇혀 자라는 개구쟁이들에게도 이처럼 꾸중 대신 한턱을 걸차게 먹이는 고차원적 습속이 계승될 수만 있다면 오죽이나 좋을까.......

혀 꼬부라진 이름의 이국종(異國種) 꽃들에 식상해진 선비들 사이에 들꽃[野生花] 가꾸기가 정착돼 간다는 건 무척 반가운 일이다. 들꽃을 봄의 뜨락에 가꾸는 멋과 여유야말로 고향 떠난 나그네에게 큰 부러움이 아닐까보냐.

할미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이다. 요즘 야생화 애호가들이 봄 뜰에 심어 즐기는 꽃 가운데 하나로서 ‘제비꽃’과 쌍벽을 이룬다. 눈물겨우리 만치 틀어 매듯 유자(U字)로 꼬부라진 할미꽃의 모가지는 누구를 닮았음일까. 한국 여인의 ‘고갯심’은 가히 국제적이랄 수 있다. 사실 두 손으로 들기조차 버거운 짐일지라도, 일단 머리 위에만 올려놓으면 발병 날 거리(십 리)쯤이야 거뜬히 이고 가던 게 할머니들의 고갯심인데 말이다. 그렇듯 빳빳하던 고갯심은 어디 가고 할미꽃은 저토록 고개를 푹 수그리고만 있을까? 오만한 자에 대한 경계심을 나타냄일까. 영글어 저절로 숙여지는 이삭의 철학을 몸소 보여주심일까.

미운 일곱 살이던 나는, 좀 전에 불을 낸 것조차 잊은 채, 그 무덤가에 지천으로 피어있던 할미꽃을 메추나무(야생 대추나무 또는 멧대추나무) 가지의 가시마다에 줄지어 꽂음으로서 무척 요상한 꽃나무를 만들었다. 그건 메마른 가지에 고개를 빳빳이 쳐든 깜자주빛의 역설적인 꽃이었다. 마른 가지에 이질적으로 핀 비로드 빛 야생화. 이들 두 가지의 이질적인 요소가 접합되어 이룩한 추상화 같은 꽃가지였다.

가난하던 옛 살림에선 빚더미가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했을지라도, ‘개구쟁이들의 메추나무엔 할미꽃이 만발’하다가, 오늘날의 TV에서는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네’라며 즐기니 고향마을 양지녘엔 올해도 할미꽃이 피고 있을려나?

할미꽃은 무력해 보이는 고갯심에 비해 그 뿌리에는 강력한 독소를 지닌 유독성(有毒性) 식물이다. 더욱 꽃과 꽃가루에도 독이 숨었기에 아이들은 할미꽃을 아예 못 만지도록 했는데도 나는 감히 그 불문율마저 어긴 셈이었다. 그 독성이 어느 정도냐 하면, 할미꽃 뿌리를 돌로 찧어서 시골 변소에 넣기 바쁘게 구더기가 박멸됨은 물론, 찧을 때 튀긴 물이 살갗에 묻기만 해도, 강력한 화공약품에 덴 것처럼 금방 헐어버리고 말 정도이니 말이다. 따라서 사람도 겉으론 순하고 맥없어 보일지라도 결코 깔보려 들지 말아야 하겠다. 그런 ‘무력해 뵈는 사람’일수록 화가 나게 하면 불보다 더 무서운 법이니까.

여섯 장으로 된 꽃잎의 안쪽은 보드라운 깜자주빛인 반면, 바깥쪽은 희고 짧은 솜털이 보송한 할미꽃은, 나로 하여금 비로드치마의 가름 옷에다 동백기름으로 낭자머리를 빗어 넘기시던 젊은 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소담스러우면서 무덤덤하고 곰살가운 구석이 있으면서 엉겅퀴처럼 해가 넘도록 끈질기게 이어가는 그 생명력. 이게 겉으론 범부(凡夫)이면서 속으론 선비이고자 하는 우리의 바램을 잉태한 꽃인지도 모른다.

할미꽃은 토질의 척박함쯤이야 탓하지 않는 대신 따사로운 햇살만은 무척 소중스레 여기는 향일성(向日性) 식물이다. 어머니의 사랑 또한 귓가에 서리가 앉은 나를 햇볕 같은 사랑으로 품어주는 앙가슴이 아닌가 싶다. 할미꽃계절이면 달려가고 싶은 두메마을이여, 그 두메를 지키는 새하얀 우리 어머님이시여! /./


* '사투리'는 김주석의 별명임


 

월간 '에세이'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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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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