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서 평론] 대중음악의 풍류시인,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의 삶과 노래
2017년 06월 07일 (수) 01:19:12 박성서 webmaster@newsmaker.or.kr




‘남원의 애수’, ‘행운을 드립니다’의 풍류시인,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의 삶과 노래
서민적인 해학과 풍자로 우리 민요를 대중화시키다

‘남원의 애수’,‘청춘의 꿈’, ‘잘 있거라 부산항’등으로 50~60년대를 풍미했던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
그의 노래는 흥과 애환, 풍류와 해학이 넘친다.
그러나 신랄한 세태풍자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이 느껴질 정도로 매우 친근하고 서민적이다.
대중가요와 민요, 그리고 만요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그의 노래 속엔 우리 가락이 구구절절 배어 흐른다. 감칠 맛 나는 창법과 흥겨운 멜로디로 다소 어렵고 멀게 느껴질 수도 있는 민요를 대중화시킨 공로 또한 크다고 하겠다.

‘남원의 애수’로 데뷔해 ‘효녀 심청’,‘생일 없는 소년’,‘회전의자’같은 히트곡은 물론‘잘 있거라 부산항’,‘행운을 드립니다’등의 노래를 직접 만든 주인공. 구수한 입담과 흥이 넘치는 노래로 최근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무대에 오르는 원로가수 김용만, 늘 이웃집 아저씨처럼 소탈하고 넉넉한 그의 노래에 담긴 비하인드 스토리, 그리고 지금 살아가는 이야기.

글 l 박성서(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6연음까지 구사하는 등 멋과 흥이 가득한 ‘김용만 멜로디’

▲ 가수 겸 작곡가 김용만

흥겨운 가락과 구수한 입담으로 대중들을 즐겁게 해주는 원로가수 김용만. 특히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던 우리 민요를 대중화 시키는데 누구보다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의 노래엔 유독 '굴림'이 많다. 보통 4연음, 5연음은 기본이고, 심지어 6연음까지 구사한다. 이 화려한 테크닉이 그의 노래를 한결 흥겹고 멋스럽게 만드는 비결이다. 그런 탓일까, 그의 노래는 얼핏 듣기엔 쉽게 느껴지는데 막상 따라 부르려면 매우 어렵다. 실제로 그의 음폭은 매우 넓다. 보통 가수들보다 키가 하나 높은 G음까지 구사함은 물론 낮은 음도 일반인보다 한 음 정도 더 내려갈 정도다.

처음 일반 대중가요로 데뷔했지만 점차 우리 가락을 접목시킨 민요와 만요 등으로 폭을 넓혀간 가수 김용만. 그는 경기민요를 하던 국악인 김대근 선생의 5남4녀 중 3남으로 서울 종로에서 출생했다. 셋째 동생인 김용남씨 또한 대금 연주와 악기 제작까지 했던 국악인이었다.

유독 호기심 많고 새로운 것을 좋아했던 그는 일곱 살 때부터 하모니카를 갖고 놀기를 좋아했다.
“하모니카를 누구에게 특별히 배운 건 아니었어요. 그냥 내키는 대로 불고 다녔죠. 아무렇게나 제멋대로 분다고 누구 하나 야단치는 사람은 없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자나 멜로디조차 제대로 몰랐을 때니까요.”  그렇듯 그는 아무렇게나 멋대로 부는 것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회고한다. 악기 다루는 일을 특히 좋아했을 만큼 음악적 감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리라.

성격이 밝고 원만했던 그는 유독 장난을 좋아하는 개구쟁이로 머리의 흉터자국이 사라질 때가 없을 정도였다고 회고한다.

“어릴 때부터 선친께서 구사하는 민요를 듣고 자랐기 때문에 대, 여섯 살 때부터 ‘들은 풍월’을 읊고 다녔어요. 또한 당시 동네에서 무속인들의 굿판이라도 벌어질라치면 만사 제쳐놓고 구경 갔지요. 맨 앞줄에 앉아 소리도 듣고 춤도 흉내 내보고, 또 점심때가 되면 음식을 거저 얻어먹는 재미도 컸고...”

그는 유년 시절, 서울 종로의 효제, 광희, 동대문초등학교 등 세 군데나 옮겨야 했을 정도로 이사를 자주 다녔다. 또 중학교 때 6.25를 겪는 등, 그 시절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러했듯 그 또한 매우 어려운 시절을 견뎌야 했다.

친구 악기점에서 작곡가 김화영 만나 ‘남원의 애수’ 취입하며 데뷔

당시 악기점에서 일하는 친구 덕에 그 곳을 드나들면서 ‘개나리 처녀’의 작곡가 김화영 선생을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남원의 애수(김방아(김부해의 예명) 작사, 김화영 작곡)'를 취입, 가수로써 활동을 시작한다.

“당시 피아노가 귀하던 시절이라 남의 피아노를 겨우 빌려 하루 한 시간 씩, 3일 간 연습 끝에 이 '남원의 애수'를 취입했어요. 이때가 열아홉 살 때였지요.”
춘향의 절개와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남원의 애수’는 지난 2005년 5월, 노래의 배경이 되는 남원 광한루 우측에 위치한 남원관광단지 내에 노래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이 노래가 히트된 이후 당시 신신레코드사(이후 신세기)에 전속가수로 발탁, ‘효녀 심청(강남풍, 전오승)’을 비롯해 ‘청춘의 꿈(김용대, 김용대)’, ‘삼등인생(반야월, 김교성)’, ‘생일 없는 소년(최치수, 김성근)’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인기가수의 반열에 오른다.

김용만의 노래는 지극히 서민적이다. 특히 삶의 애환이 해학적으로 담겨 있다. ‘왕대포 인생(반야월 김교성)’, ‘월급날 맘보(손로원, 손목인)’, ‘실업자 인생(반야월. 김성근)’, ‘한 잔술 부기(허경구, 허경구)’, ‘장기타령(반야월, 김용환)’, ‘국산연초 아리랑(월견초, 손목인)’ 등등.

그런가하면 유독 고전 인물이나 명작, 혹은 전래동화를 소재로 한 노래들을 많이 발표한 점도 특이하다. ‘청산유수(유노완, 김병수)’, ‘정몽주(반야월, 전오승)’, ‘주선 정만서(정월산, 유금춘)’, ‘무영탑(김문응, 전오승)’, ‘심봉사(강남풍, 이재현)’, ‘삼국지(한수봉, 전오승)’, ‘놀부와 흥부(반야월, 김교성)’, ‘한양 가는 방자(유노완, 전오승)’, ‘햇님 달님(야인초, 이정화)’ 등등. 마치 구수한 옛날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듯 고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렇듯 김용만의 노래는 지극히 서민적이고 해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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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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