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생물학

 

 

  사실 어렸을 때 내가 큰 관심을 가지고 좋아한 분야는 생물학이나 동물학이었지만, 고등학교는 기술을 배워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특차는 교통고등학교 토목과를 지원했던 것이다. 그것도 고종인 김동화 형이 토목과에 다니고 있어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교통학교를 낙방하자 곧장 경주공업고등학교 토목과에 진학했다. 다음으로 대학도 졸업 후에 취직을 하려고 공과대학 그것도 서울대 토목과를 지망했던 것이다. 연세대학교에 지원할 때도 화공과를 가는 것이 상책이라 여겼기 때문에 화공과를 지망한 것이지 화공과가 생물학과보다 좋아서 지망한 것은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가 농군이었으니 비료를 잔뜩 만들어서 농민들에게 싼값에 공급토록 하자는 것이 내 속에 내재한 목적이었다.

 

 

  나는 동물학 특히 동물 심리학(행동학)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런 분야의 책은 부산에서 도저히 구해볼 도리가 없었기에 이화여대에서 공부하던 행자(4)한테 서울에서 좀 구해 보내라고 부탁했지만 서울에서도 그런 책을 구할 수 없다는 전갈이었다.

 

 

  젊어서 내가 해 보지 못한 생물학 분야는 병수(차남)가 KAIST에서 생명과학을 공부해서 박사 학위를 취득 해서 바이오 산업에서 일하고 있고, , 심리학 분야는 보슬()이가 대학에서 공부를 했으니 대리 만족일지라도 그만하면 더 욕심 부릴 것 없을 듯하다. 더구나 고든(장남)이가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가 됐으니 내가 하고 싶던 방송 프로듀서와 맞먹는 일이고. 이로써 우리 세 아이가 나에게 대리 만족을 주었으니, 내 조그만 소망들은 모두 다 이룩한 셈이다. 그로써 자위를 삼아야지. ! 옛날에는 제 자식이 무식은 면했다고 친구들에게 소개할 때 제 신은 찾아 신는다.’

고 했는데, 그건 꼭 같은 모양의 짚신이 방문 앞에 여러 켤레 어지럽게 놓여 있더라도 제 신쯤은 찾아 신는다는 말 즉 제 앞가림은 한다는 소리다. 한수, 보슬, 병수 모두 제 신을 찾을 수가 있으니 아비로서 흐뭇하다.

 

 

  만약 그 시절에 생물학을 공부했거나 심리학을 공부했다면 취직을 할 수 있었을까. 화공과를 나와서도 어디 원서 한 장 낼 만한 기업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군대에도 안 갔다 오고 별 빽도 없었는데, 한국화약에 입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봐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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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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