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길 끝에서 만나는 것은…
길 떠나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 다를 테다. 하지만 돌아오는 그들의 몸속 어딘가에는 어떤 배움과 느낌이 스며들어 있을 것이다. 대체 여행이란 무엇이기에.
일본의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70)의 책 '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은 일본서 1992년에 발간된, 2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책'이다. 그러나 책에서 낡은 느낌을 찾기는 힘들다. 이 건축가의 아이디어는 1965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세계 각지를 방황하듯 여행하며 '발'로 체득한 것이기 때문이다. 20대였을 때 그가 거의 무일푼으로 유럽으로 떠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건축을 지향한 나날은 긴장과 불안 속에서 낯선 땅을 홀로 헤매는 여정과 같았다."(11쪽) 고교를 졸업하고 갖가지 아르바이트를 전전해 모은 돈으로 떠난 유럽여행에서 작가는 건축을 삶의 목표로 굳히게 된다. 프랑스 시골 언덕에 있는 르 코르뷔지에의 대표작 롱샹성당, 프랑코 총통 치하에서 쓰레기 더미에 덮였던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걸작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추억엔 안도 다다오의 청춘 시절이 담겼다. 젊은 날의 초상 중 인도의 아마다바드 여행 경험은 감동적이다. 건축가란 대개 지표면 위에서 승부한다. 그런데 안도는 오사카의 '나카노시마 프로젝트'에서 모래사장 아래에 미술관·회의장·뮤직홀 등을 '묻었다'. 그 모티브가 바로 아마다바드였다. 그는 이 사막에서 지하 100m쯤 계단을 내려가서 만나는 우물 구조물을 보고 먼 훗날 나카노시마 프로젝트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금 생각하면 불안과 긴장 속에 여행하던 시절 아마다바드의 체험이 내 안에 숙성·발효되어 20년도 더 지난 지금 나카노시마 프로젝트에 상당 부분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113쪽)
- ▲ 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 거리 암태도의 저녁노을에 유성용 작가의 스쿠터가 서 있다. /책읽는수요일 제공
유성용은 '다방기행문'에서 "다방은 구실"(90쪽)이라고 실토한다. 전작 '여행생활자' '생활여행자'로 팬을 확보한 저자는 스쿠터 한 대 몰고 전국의 다방을 유랑한다. 인스턴트 커피로 유행이 옮아가면서 정작 원두를 갈아 내렸으면서도 싱겁다는 평 때문에 '맹물다방'이란 이름이 붙은 사연부터 '딸기다방' '미인다방' '향수다방' 등 시골 길가의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들에서 만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가 선택한 스쿠터라는 운송수단은 묘한 매력을 갖는다. 스쿠터는 선택할 수 있는 길의 종류, 속도, 숙소가 딱 자전거와 자동차의 중간쯤이다. "시속 60킬로미터가 넘으면 눈물이 질질난다. 액셀을 더욱 당겨 시속 100킬로미터 언저리에 이르면 눈물이 마른다"(15쪽). 덕분에 그의 감성 그물망엔 느릿한 속도로 흘러가는 이 시대의 누추하고도 리얼한 일상이 걸려든다.
안도 다다오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구체적인 이동만이 '여행'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 궤적을 더듬으며 반추하며 기억을 보다 깊이, 뚜렷하게 만드는 사색의 '여행'도 존재하리라.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여행'이 얼마나 격렬히 마음을 흔들었는가, 얼마나 스스로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방시켰느냐다."
안도 다다오 지음|이기웅 옮김|오픈하우스|302쪽|2만2000원
다방기행문
유성용 지음|책읽는수요일|368쪽|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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