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명의 문화예술인이 '그곳'에 깃든 이유

바닷가의 비린내, 지리산 자락의 청정한 산내음과 거름 냄새, 작물을 거둬들일 때의 흙의 촉감. 몸이 느끼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힘든 것들이다. 그 경험의 주체인 몸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곳곳에 관한 이야기다.

조선일보 수석 논설위원인 저자는 작년 초 부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국을 돌면서 21명의 문화예술인·종교인을 만나 왜 거기 사는지 물었다. 대도시도, 어촌도, 산골도 있다. 함민복(강화) 한승원(장흥) 안도현(전주) 문순태(담양) 김도연(평창) 김영승(인천) 이원규(지리산) 은희경(일산) 정일근(울산) 등 문인이 가장 많고, 영화감독 곽경택(부산) 금강 스님(해남) 화가 사석원(서울 동대문시장) 민속학자 황루시(강릉) 판화가 이철수(제천) 화가 박대성(경주) 화가 이왈종(서귀포) 등이다.


책의 아무 곳이나 펼쳐도 그 느낌은 그대로 전해진다. "박대성은 아침마다 묵주를 들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경애왕릉부터 삼릉, 삼봉사, 포석정, 삼존불까지 천천히 걷는다. 걸으면서 경주가 들려주는 신화에 귀 기울인다."(171쪽) "대관령 자락 언덕배기, 소설가 김도연이 노부모와 함께 일구는 밭은 내년 봄까지 평화롭게 쉴 것이다."(157쪽)


책의 주인공들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정착하기까지는 사연도 많다. 소설가 한승원 김도연처럼 가출하듯 고향을 떠났다가 도시생활에 지친 심신을 이끌고 귀향한 후 회복한 경우도 있지만 서울이 고향인 사람들은 서울 한복판 지지고 볶는 시장통에서 고향을 느낀다. 소설가 조경란은 자신의 모든 문학작품이 잉태되고 몸을 푼 '봉천동'이 '중앙동'으로 바뀐 것이 아직도 어색하고 섭섭하기만 하다.

"전주는 적당히 외로워할 수 있고 적당히 그리워할 수 있는 곳"(안도현) "서울살이 10년의 환멸과 권태를 단숨에 깨뜨리는 자발적 가난의 외통수, 백척간두에서 한 발을 내딛는 해방"(이원규) 같은 삶의 희열이 곳곳에 묻어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행복감의 일부를 감상하고 있는 셈이다.

내 인생의 도시
오태진 글·사진|푸르메|312쪽|1만2800원


김한수 기자(우리 맏이)

조선일보 출판팀장 조선일보 2011.07.02(토)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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