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두 교황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0.09.16 09:00

 

 

 

 

 

 

 

 

 

‘종교’라는 단어를 들으면 먼저 딱딱한 느낌이 드시죠? 그러나 딱딱한 겉모습 뒤엔 재미있고 감동적인 스토리도 많습니다. 종교가 가진 천(千)의 얼굴을 찾아가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혼밥' '빨강 구두' 이어 교황 종신제도 바뀔까?

 

영화 '두 교황'의 포스터. 앤서니 홉킨스(왼쪽, 베네딕토 16세 역할)와 조너선 프라이스(오른쪽, 베르골리오 추기경 역할) 등 노배우들이 명연기를 보여준다. /판시네마

※이 글엔 영화두 교황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한 주 안녕하셨습니까.

 

이번주에는 영화 두 교황이야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이 영화가 생각난 것은 지난 8월초 외신이 보도한 베네딕토 16(93) 전 교황 건강 위중설 때문입니다. 당연히 저는 베네딕토 교황 선종(善終)에 대비한 기사를 준비했지요. 다행히 교황청이 곧바로 위중한 상태는 아니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베네딕토 교황을 주인공 중 한 명으로 삼은 영화 두 교황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재미있게 봤고 전체적으로 가톨릭 이미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앤서니 홉킨스와 조너선 프라이스 등 명배우들의 호연도 일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올초 만난 바티칸 사정에 정통한 분은 보기에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지고 만든 영화는 맞지만, 옥에 티가 너무 많더라는 이유였습니다.

 

 

영화 '두 교황'의 마지막 장면. 2014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와 독일이 맞붙은 결승전을 전현임 교황이 함께 시청한다는 설정이다. /판시네마

영화 '두 교황' 속 '옥에 티'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영화는 각각 자신의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한 두 명의 노(老) 성직자 이야기입니다. 즉,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베르골리오 추기경이지요. 베르골리오 추기경이 교황을 찾아와 사표를 내려하자 교황은 오히려 자신이 그만 둘 것이라고 하지요. 교황 별장에서 두 사람이 보내는 1박 2일,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 회의(콘클라베) 장면 등 일반인들로선 알기 힘든 내밀한 바티칸 이야기가 흥미롭지요.

 

이 영화는 ‘디테일’이 생생합니다. 쾌청한 날 교황의 별장에 도착한 베르골리오 추기경에게 수녀가 우산을 건네면서 “로마에선 언제 뭐가 바뀔지 모른다”고 말하는 것도 상징적이지요. 생체리듬을 체크하는 스마트워치가 고령(高齡)의 베네딕토 교황에게 “멈추지 말고 계속 걸으라”고 지시하고, 베네딕토 교황은 베르골리오 추기경의 구두끈 풀린 것을 지적하는 식입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변화는 타협”이라고 말합니다. ‘꼼꼼하면서 전통을 고수하는 베네딕토 대(對) 인간적이면서 변화를 추구하는 베르골리오’를 대비시키며 교황권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잘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관람객에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분이 말한 ‘옥에 티’ 중 가장 큰 ‘티끌’은 교황이 생전에 사임하면서 자신의 후임을 낙점(落點)하려 한다는 전제입니다. 또 추기경이 그만두겠다며 교황을 찾아오고 교황은 그를 따로 면담한다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법은 전세계 모든 교구장은 만 75세가 되는 해에 사임 청원을 교황에게 보내도록 규정돼 있습니다. 사표 수리 여부는 교황에게 달려있지요. 따라서 영화의 이런 설정은 마치 교황이 후임자를 내정해놓고 콘클라베는 요식행위로 치르는 것처럼 보여 어불성설이라는 것입니다.

 

요한 23세 교황. 교황 재위 기간은 4년여에 불과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시작하면서 쇄신운동을 주도해 현재의 가톨릭 변화를 이끌었다. 2017년 성인으로 시성됐다. /AP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가톨릭 쇄신한 요한 23세, 교황 '혼밥'도 없애

그밖에도 ‘옥에 티’가 많지만 흥미롭게 들은 것은 ‘혼밥’ 이야기였습니다. 영화에서 베네딕토 교황은 베르골리오 추기경과 1박2일간 별장에서 지내지만 저녁 식사와 다음날 아침식사를 혼밥합니다. 별장의 수행원들은 베르골리오 추기경에게 교황의 혼밥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지요. 그분은 “1958년 성(聖) 요한 23세 교황이 취임하기 이전까지는 교황의 ‘혼밥’이 관례였다. 그러나 요한 23세는 이 관례를 없앴다”고 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통해 가톨릭을 현대적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입니다. 라틴어로 진행하던 미사를 현지어로 바꾸고, 사제가 신자를 바라보며 미사를 드리도록 한 것도 공의회를 통해 바뀐 큰 변화입니다. 혼밥처럼 사소하게 보이는 부분부터 바꿨던 분이 결국 가톨릭의 오랜 전통을 쇄신해 현대화한 것이지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빨간 구두'를 '검정 구두'로

프란치스코 교황도 관례를 바꾸고 있습니다. 거처를 교황궁이 아니라 손님들이 묵던 ‘성녀 마르타의 집’으로 옮긴 것은 유명합니다. 사소한 사례로는 전임 교황들이 신던 빨간 구두를 검정 구두로 바꾼 것을 꼽을 수 있겠지요. 영화에서도 유심히 보시면 베네딕토 교황은 빨간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사소한 변화일지 모르지만 앞으로 교황 될 분들이 다시 빨간 구두로 돌아가긴 쉽지 않을 것 같네요. 관례라는 것이 바꾸기 전까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막상 바꾸고 나면 또 금방 적응되는 것이니까요.

 

 

베네딕토 16세의 교황 재위 시절 모습(왼쪽)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한국을 찾았을 때의 모습. 복장이 흰색인 것은 같지만 베네딕토 교황은 빨간 구두, 프란치스코 교황은 검은 구두를 신고 있다. /AP-신현종 기자

‘옥에 티’ 이야기를 듣고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확실히 처음보다 재미는 덜했습니다(저 역시 주변 사람들이 짜증낼 만큼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고증을 따지거든요.) 제목은 ‘두 교황’이지만 한 교황(프란치스코)을 빛내기 위해 다른 교황(베네딕토 16세)을 조연으로 내려놓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다시 보면서 또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는 변화를 싫어하는 것으로 묘사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야말로 21세기 가톨릭에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분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베네딕토 교황은 거의 600년만에 처음으로 생전에 교황직에서 물러났습니다. 1294년 첼레스티노 5세,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등 생전에 물러난 교황은 모두 교황권을 둘러싼 엄청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타의에 의해 물러났지요.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에 대해서도 바티칸의 재정(財政) 스캔들과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등 여러 문제 때문에 등떠밀린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자들이 어디 그 정도 문제로 권력을 내려놓는 경우가 흔한가요? 지금 우리 주변을 봐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종교계역시 이런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베네딕토 교황은 “더 이상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사임을 결심한 내적 동기였다는 이야기겠지요.

‘혼밥’ ‘빨간 구두’ 등의 전통이 되돌리기 어려워졌듯이 앞으로는 교황이 전세계 12억 교인들의 영적 지도자로서 제 역할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생전에 사임하는 것이 새로운 전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까지 보여온 면모로 볼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기도 하고요. 여하튼 ‘두 교황’ 영화를 여러 번 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추신: 이번에도 글이 장황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영화나 드라마는 따지지 말고 보세요~

2020년 9월 16일 아침. 김한수 올림.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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