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좋은 부처님 말씀…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겼지요”

대방광불화엄경 10권 번역한 동학사 화엄학림장 일초 스님

입력 2022.05.23 03:00
'화엄경'을 번역한 비구니 일초 스님. 스님은 "50년간 후학을 가르쳐온 경험을 바탕으로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옮기려 애썼다"고 말했다. /민족사 제공

“이렇게 좋은 말씀을 어디서 들을까. 오직 부처님에게서만 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한문을 아는 지식인뿐 아니라 젊은 스님들과 일반인들도 알기 쉽게 번역하려 했습니다.”

동학사 화엄학림장 일초(一超·79) 스님이 ‘대방광불화엄경’(화엄경) 전 10권을 불교서적 전문 출판사인 민족사에서 번역 출간했다. 일초 스님은 비구니 가운데 강백(講伯)으로 꼽히는 학승. 60년 전 화엄경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구절에 끌려 출가한 후 학승의 길을 걸어온 노비구니의 역작이다.

최근 기자간담회를 가진 일초 스님은 “화엄경을 읽으면 항상 환희심이 났고, 이렇게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한 생 출가는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교 집안에서 자란 스님은 ‘여자라고 이렇게 살다가 말 것인가’란 의문을 가지고 절을 찾았다. 그러나 시집살이(행자 생활)는 무척 고됐고 출가를 포기하려 했다. 그 무렵 광주 신광사에서 당대의 강백 고암 스님이 사미니계를 주는 행사에 참석해 구석에 앉아 있었다. 고암 스님은 “왜 거기 앉았냐” 물었고, 일초 스님은 “집에 가려 한다”고 했다. 고암 스님은 “장삼을 가져오라” 했다. 심부름인 줄 알고 장삼을 가져오니 입혀준 후 ‘일초’라는 법명을 주고 “이제 너는 계를 받았으니 집에 가면 거지와 같다”고 했다. 그렇게 출가해 공부하던 중 만난 구절이 ‘일체유심조’였다.

일초 스님이 번역한 '화엄경' (전10권). /민족사 제공

이후 동학사 강원(講院)에서 경전을 공부하고 강사가 된 그는 50년간 후학을 가르쳤다. 화엄경 전체 번역에 뛰어든 것은 2018년 4월. 하루 10시간씩 작업했다.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으나 자주 벽에 부딪혔다. 깜깜했다”고 스님은 말했다. 한문으로 읽을 때의 느낌과 아름다움을 한글로 풀어 쓰는 것은 생각과 달랐다. 한글로는 ‘안다’ 하나이지만 ‘지(知)’ ‘해(解)’ ‘지(智)’의 뜻이 다 다른 것은 대표적인 예. 스님은 ‘지(知)’는 ‘알다’, ‘해(解)’는 ‘이해하다’, ‘지(智)’는 ‘증득(證得)하다’로 풀었다.

 

번역 과정은 전통 강원 스타일로 했다. 스님이 초역한 원고를 후학들이 읽고 스님은 원문을 대조하다가 ‘아, 그건 그 표현이 아닌데’ 하면 토론을 거쳐 표현을 수정했다고 한다. 이 과정을 4번 거쳤고 책의 왼쪽 페이지엔 한문 원문, 오른쪽엔 한글 번역을 편집했다. 스님은 화엄경 중 ‘미륵보살품’에서 미륵보살이 “나는 한 문장, 한 글귀를 얻어 듣기 위해 왕위(王位)를 버리지 않은 적이 없고, 소유한 재산을 버리지 않은 일이 없다”는 구절을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했다. “저는 살아오면서 도대체 무엇을 버렸을까를 되새겼습니다.”

스님은 “화엄경의 가르침은 마음을 어떻게 쓰느냐”라고 말했다. “마음은 부처도 만들고 부자, 가난한 사람,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만듭니다. 나쁜 마음을 가지면 자신이 제일 괴롭지요. 화엄경을 읽으며 나쁜 마음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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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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