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나에 눈뜨면서 진화는 역행했다

"지난 6000년 동안 인류는 일종의 집단적 정신병을 앓아 왔다."

영국 심리학자인 저자는 인류가 원시사회에서 문명사회로 넘어오면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후퇴'했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제, 전쟁, 물질주의 그리고 각종 정신병리 현상은 인류가 '자아'를 의식하면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방대한 고고학·인류학 자료를 섭렵한 저자가 상정하는 낙원은 원시인 또는 갓난아기처럼 자아에 대한 의식이 없던 상태. 아프리카의 피그미족은 '질투심과 폭력 없이 온순하고 조화를 이루는 생활양식을 유지'(142쪽)하고 호주의 원주민(애버리진)은 '서로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공유하는 하나의 열린사회'(98쪽)를 유지한다.

그럼 6000년 전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대홍수와 사막화 등 환경 재앙에 따라 낙원에서 쫓겨난 인류는 어느 순간 집단적 심리 변환 즉 '자아 폭발'을 겪게 됐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 시기엔 공동 매장에서 개인 매장으로 매장 관행도 바뀐다. 무덤에 부장품을 넣는 '최초의 개인주의자들'(스웨덴 고고학자 매츠 말머)이 탄생한 것이다.

문명에 대해 지나치게 비관적인 태도가 있지만, 저자는 서문에서 "지난 수천 년 동안 인류 역사를 채웠던 광기로부터 우리를 천천히 벗어나게 하는 진화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속도를 올리자고 청한다.

자아폭발

스티브 테일러 지음|우태영 옮김
다른세상|461쪽|2만2000원


김한수 출판팀장

조선일보 2011.10.1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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