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 100세 어르신들의 당부…

 "남는 건 사랑뿐"

    •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지난달 입적한 무산 스님 수첩엔 고학생 장학금 등 善行으로 가득 "인생의 잔고는 자비·사랑" 실천… 사랑 빠진 正義 아닌지 돌아볼 때

    "이게 내 행장(行狀)이다."

    지난달 86세를 일기로 입적한 신흥사 조실 무산(霧山) 스님은 생전에 은행통장과 손글씨로 메모한 수첩을 휘리릭 넘기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용에 대해선 사찰의 식사를 책임지는 공양주 보살의 자녀 등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낸 기록이라고만 했다. '행장'이란 고인(故人)의 주요 활동을 정리한 글이다. 무산 스님의 경우도 생전의 업적이 행장으로 소개됐다. 통장과 수첩 내용은 공식 행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통장과 수첩은 이를테면 본인만의 '비공식 행장'이었던 셈이다.

    무산 스님 입적 후 그가 생전에 강원도 인제군과 용대리의 주민들과 학생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았는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용대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분향소를 마련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무산 스님은 자신이 떠나고 난 후 남는 인생의 잔고(殘高)는 자비 즉 사랑의 흔적뿐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그의 생각은 옳았다.

    무산 스님의 '비공식 행장'을 떠올리면서 100년 가까이 신앙의 힘으로 살아온 어르신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것이 '사랑'이란 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먼저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황숙희 권사. 결혼하면서 시어머니 권유로 개신교 신앙을 가진 그가 80년 신앙의 영성과 지혜를 담아 올 초 펴낸 책은 제목 자체가 '남는 건 사랑뿐일세'였다. 신앙에서 우러난 잠언 같은 글 36편에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빼곡하다. "노년이 될수록 사랑받기를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열심히 사랑하며 사는 인생이 되라"고 권했다.

    1920년생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역시 올 초 신앙과 인생을 정리한 책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숭실중학교 재학 시절의 일화. 호주 출신의 목사가 전 세계 전도 여행 중 숭실학교를 찾았다. 설교를 마친 목사는 학생들에게 수수께끼를 냈다. '이 세상에서 제일 강한 것은 무엇인가?' '사자' '코끼리' '전기' '태양' 등의 답변이 나온 가운데 김 교수는 '정의'라고 적어 냈다.

    "사람이 의롭게만 살면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라는 해설까지 붙였다. 그러나 막상 그에게 돌아온 것은 2등상. 1등은 '사랑'이었다. 부상으로 받은 신약성경 뒤표지엔 '정의'라는 답으로 2등상을 준다는 내용이 영어로 적혀 있었다. 도저히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김 교수는 '2'를 지우고 '1'로 고쳐 쓰곤 집에 돌아와 먹을 갈아 '義(의)' 자를 써서 책꽂이에 붙여놓았다고 한다. 속으론 '교장 선생님과 목사님이 몰라서 그렇지, 사랑보다 정의가 강하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였다. 나라를 빼앗긴 불의(不義)한 상황을 보는 중학생의 눈에 '사랑'은 한가한 이야기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는 8년쯤 후 생각을 고쳤다. 일본 조치(上智)대 유학 시절이었다. 수많은 이의 사랑과 도움 그리고 눈물겨운 신앙의 체험을 통해서였다. 그는 "지금은 기독교 신앙이란 사랑으로 정의를 완성시키는 것이라 가르친다" "정의라는 현관을 통해서 사랑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라 말한다.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바탕엔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무산 스님이나 황 권사, 김 교수는 모두 드라마틱한 한국 현대사를 살아온 분들이다. 이들이 '남는 것, 남길 것은 사랑'이라 입을 모으는 것은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체험일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의의 이름으로 진행된 정죄(定罪)의 장면들을 목격해왔다.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적폐 청산이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매번 반복된 적폐 청산의 바탕에 사랑이 얼마나 깔려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의의 바탕에 사랑이 자리해야 한다는 것은 비단 신앙 영역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Posted by 사투리7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