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이 쓰레기장… 당신은 의사결정장애 환자
당신도 저장 강박? 껌종이 버린 친구와 절교해버린 여성
수집하는 물건들을 자기 자신으로 생각… 버려, 남겨? 결정 못해
"방을 깨끗이 청소하지 않으면 콜리어 형제처럼 된다."
1950년대 뉴욕의 부모들은 이런 잔소리를 했다. 호머와 랭글리 콜리어(Collyer) 형제는 전설적 인물들이었다. 유복한 가문에서 태어나 명문대 나온 형제는 1920년대 어머니가 사망한 후 직업 없이 칩거해 전화, 전기, 가스도 차단하고 살았다. 문제는 이들이 엄청난 수집가였다는 것. 책, 신문, 잡지, 마차지붕, 버려진 자전거와 유모차, 빈 깡통, 우산…. 방이 12개나 되는 저택이었지만 감당이 안 됐다. 1947년 3월 형 호머가 죽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러나 경찰은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집은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소방대원까지 출동해 170t의 쓰레기를 치우고서야 경찰은 쓰레기 더미에 깔린 형제의 시신을 발견했다. 저택은 철거됐고, 그 자리엔 '콜리어 형제 공원'이 생겼다. 2002년 공원 이름을 바꾸자는 여론이 제기됐지만 반면교사(反面敎師)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그대로 유지됐다.
- ▲ 윌북 제공(석운디자인)
미국 스미스대와 보스턴대 심리학·사회복지학 교수인 저자들은 콜리어 형제처럼 '죽어도 못 버리는' 증세를 '저장 강박(hoarding)'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1000여명을 상담한 결과를 정리해 증상별로 20여명의 케이스로 이 책을 썼다. 때론 끔찍하고 때론 연민마저 든다. 평소 '책·옷 좀 정리해야 하는데…' 생각한 적이 있다면 남 얘기 같지 않은 대목이 많다.
◆책, 옷, 고양이까지
50대의 아이린은 저장 강박 때문에 남편과 별거한 케이스. 거실엔 정체불명의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 깨진 꽃병, 2층 복도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쇼핑백 수백개, 식탁 위엔 높이 60㎝로 신문, 책, 장난감, 시리얼 상자가 쌓였다. 통로는 폭이 30㎝도 안 됐다. 그는 이미 10대 때 친구가 자신의 껌종이를 버렸다고 절교했다. 아이린 스스로 "나 빼고는 그 누구한테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물건들이었다. 13살부터 '세븐틴' '영 미스' '라이프' 등 잡지를 모으기 시작한 데브라는 점점 정도가 심해져 남의 손때가 묻은 잡지는 '훼손된' 것으로 간주했다. 스스로를 '잡지 보관인'이라 부르는 그는 국회도서관을 찾아갔다가 자신이 가진 것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곤 잡지 수집에 더 집착하게 됐다. 50대 여성 파멜라의 경우는 고양이다. 절대다수의 저장 강박 증상자가 무생물을 모으고 저장하는 것과는 다른 특수한 경우. 거리의 고양이까지 거둬 200마리를 키웠다.
◆"소유물 아닌 내 정체성"
문명사회에 소속된 인간은 대개 물질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물질주의와 저장 강박 사이엔 '소유'와 '정체성'이란 큰 차이가 있다. 저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저장 강박 증상자들은 물건(동물)을 소유물이 아닌 정체성으로 인식했다. 아이린은 "신문 광고가 나에게는 딸 사진만큼 중요하다"고 말하고 못 버렸다. 카드빚이 2만5000달러에 이르면서도 쇼핑몰로 달려가는 한 여성은 "쇼핑은 내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고 하고, TV의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던 한 저장 강박 증상자는 제작진의 "물건 중 하나를 버려보라"는 제안에 따라 쓰레기통에 갔다가 다른 물건을 더 주워왔다. 저장 강박 증상자들의 공통점은 어린 시절 사람들로부터 겪은 정신적 트라우마.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한 파멜라는 "동물의 경우는 태도가 항상 분명했죠. 순수한 사랑이라고나 할까요"라고 말한다. 또 다른 공통점은 '버릴 것'과 '남겨둘 것'을 결정하지 못하는 의사 결정 장애다. 그래도 저자들이 권한 치료방법은 분류와 버리기이다. 다만 '이 물건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곳으로 간다'는 확신을 주어야 한다. 아이린의 경우도 처음에 불필요한 쪽지 하나를 버리고도 5분 만에 "중단했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했지만 1년 반에 걸친 노력 끝에 집을 말끔히 치울 수 있었다.
◆요요현상
저자들이 저장 강박을 하나의 병리현상으로 보는 이유는 치료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완벽히 치료된 것처럼 보였던 아이린은 도서관에 취직하면서 증상이 도졌다. 오래된 신문과 잡지 폐기를 맡은 아이린은 도서관에서 버리는 신문·잡지를 다시 집으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5년 이상 깨끗한 상태로 집을 관리해온 크리스 역시 "아직도 요구르트 용기를 버릴 때 망설인다"고 말했다. 미국에선 저장 강박 증상자를 돕기 위한 '전국정리전문가협회'라는 단체가 1985년 설립됐는데 처음엔 16명이었던 회원이 현재는 4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미국 인구의 5%가 저장 강박 증상인 것으로 저자들은 추정한다.
잡동사니의 역습
랜디 프로스트·게일 스테키티 지음|정병선 옮김 | 윌북|392쪽|1만4800원.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2011.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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