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북한도 합법정부로 보는 근거로 악용될 가능성 커"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논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서 '한반도의 유일한' 문구 삭제
삭제 주장한 학자들 - "선거 실시된 38선 이남 지역에 한정된 합법정부로 승인한 것"
삭제 반대하는 학자들 - "北과 달리 유엔서 승인받은 대한민국 정통성 약화 의도"

'자유민주주의' '독재' 그리고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 중학교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교과서집필기준개발위원회(위원장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가 지난 19일 회의를 열고 초안에서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한 부분을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수정하고, 초안에선 빠졌던 '독재'라는 용어를 넣고,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이라는 구절에서 '한반도의 유일한'이란 표현을 삭제하는 의견을
국사편찬위원회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역사 교과서 논란은 3탄으로 번지고 있다.

'한반도의 유일한' 삭제?

학계 일부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런 주장의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의견이다.

이 표현의 삭제를 주장한 임종명
전남대 교수(사학과)는 17일 공청회에서 "대한민국을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한 1948년 유엔 총회 결의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유엔임시위원단 협의 및 감시 아래 선거가 실시된 38선 이남 지역에 한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고(故) 이영희 전 한양대 교수도 이런 논리로 "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가 아니다"는 주장을 여러 차례 펴왔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학자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반론을 편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대한민국은 역사적 정통성과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과 차별화됐다"며 "'한반도의 유일한'이란 표현이 빠지면 당시 유엔 승인을 받지 못한 북한과는 달리 대한민국이 한반도에서 유엔 승인을 받았다는 의미가 약해지는데 이 부분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반도 유일'을 빼는 것은 비단 표현 삭제가 문제가 아니라 남한 정부만 아니라 북한도 그 나름의 논리로 합법 정부로 볼 수 있다는 주장으로 비약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또 "'대한민국은 유엔으로부터 승인받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쓰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며 "무조건 '한반도의 유일한'을 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주의' '자유민주적 질서'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용어 역시 여전히 논란 중이다. 이태진 국사편찬위원장은 지난 17일 공청회에서 "헌법에 나오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라는 표현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수렴한 집필기준개발위는 두 곳에 표현됐던 '자유민주주의' 중 '4·19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뒤의 표현을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로 수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의미가 모호해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자료 유출도 문제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논의 과정 안(案)이 잇따라 유출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정 입장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사편찬위원회도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최근의 유출 문제와 관련해 보안 상황에 대한 특별 점검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2011.10.24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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