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두 손가락 컴퓨터

사투리 씀


런던의 택시기사 시험에는 특정 시간대에 지정하는 지점까지 최단시간, 최단거리로 주파하는 길목을 도시하라는 문제가 나온다던데 그 도착 지점이란 게 다름 아닌 보통 사람네 집 현관 앞이라는 데는 감탄이 따랐다.

혹시 해당 구역의 노련한 집배원이라면 골목골목은 물론 몇 호 집에 사는 세대주의 이름까지도 훤하겠지만, 초행의 길손이 내미는 종이쪽지의 주소만 보고서라니?

그래 연전에 런던에 갔던 길에 내가 직접 타본 택시를 두고 시험을 해봤더니, 내가 찾는 교포 식당 앞에다가 초행길인 나를 어김없이 데려다 주는 데는 혀가 내둘러졌으며, 우리나라 택시 수준과 비교가 되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런던 기사들의 성실성과 노력도 있겠지만, 영국이란 사회적 바탕에도 차이가 없진 않을 듯싶다. 영국에는 ‘무엇에 관한 모든 것’ 즉 ‘A to Z’란 자료가 대단히 다양하게 많으며 그걸 기사들이 잘 활용할 줄 아니까다.

예를 들어, 어느 동리 몇 번지를 찾아가려면 몇 번 지하철역 몇 번 출구로 나와 어느 지점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라는 것에서부터, 종다리는 전 영국에 몇 십만 쌍이 둥지를 틀며, 어떤 초원에 가면 화려한 노랫소리를 즐길 수 있다는 ‘들새[野鳥] 관찰의 A to Z’ 등등 별의 별 것이 다 있다. 따라서 영국 사람들은 어릴 때, 무엇이거나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익혀나가는데 익숙해 있다.

한편 우리 TV에서 가끔씩 보면 피의자를 앞에 둔 형사 차림이 양 검지손가락을 종횡무진으로 두드리며 조서를 꾸미는 장면과 마주치게 된다. 컴퓨터 자판이란 본디 열 손가락을 전부 쓰도록 인간공학적으로 설계된 물건일 텐데 두 손가락만으로 컴퓨터를 치는 것을 볼라치면 신기하기조차 하다.

서툰 솜씨일 적에야 두 손가락만 쓰는 편이 오히려 빠를지는 몰라도, 어느 지경을 넘고 보면 열 손가락과는 어림없을 것임에 틀림없는데 말이다.

무릇 기계 기구는 설계된 대로 쓰는 것이 바른길인데, 우리는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사고방식에 지나치게 골몰하고 있는 느낌이다. 과정은 차치하고 눈앞의 결과만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는 와중에 여덟 손가락의 멀쩡한 기능이 퇴화하는 줄은 모르고 소탐대실을 하고 있으니......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그만’이라는 소릿길은 단기적인 방편일 수 있을지언정 장기적으로는 퇴보일 수밖에 없다. 제아무리 두 손가락에 능한 솜씨일지라도 열 손가락을 따르려면 족탈불급일 뿐더러, 열 손가락을 제대로 쓰려면 기초부터 다시 익히는 도리밖에 없다. ‘우선 먹기 곶감이 달다’는 소릿길을 제길로 착각하는 사고는 옛 현일들의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과도 어긋난다.

컴퓨터 자판을 치는 법이나 들새 관찰은 물론 초행객이 목적지를 쉽사리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처음(A)부터 끝(Z)까지를 차곡차곡 체계적으로 익히는 느긋함이 필요하다. ‘아무리 급해도 바늘 허리에다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법’이므로, 우선의 이익에 집착하여 두 손가락으로 컴퓨터를 치는 것은 금물이며, 더더구나 그런 실력으로 인터넷을 해보겠답시고 설치는 건 자격 미달이다.

인수분해에 능해야만 2차 방정식을 풀 수 있고, 방정식을 알아야 미분과 적분을 풀 수 있듯이, 사회 각층에 깔린 사계의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처음부터 끝까지나 무엇에 관한 모든 것 즉 ‘A to Z’에 관한 써먹기 좋은 책자를 다양하게 펴내면 오죽이나 좋을까?

될성부른 나무를 키우려면 아이 적부터 손목잡고 가르치는 어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컴퓨터를 두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얼뜨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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