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차표 잡아먹는 단추 구멍
사투리 월간 에세이 기고
전철을 이용하다가 저지른 실수 한 토막.
기적 소리엔 사람을 들뜨게 하는 속성이 숨었길래 그런지 나는 열차를 탈 때마다 어릴 적 기차놀이를 회상하곤 한다. 그런 기차 여행에도 기분 잡치는 요소가 있은즉, 차표를 산 다음 개찰(改札)을 받아야만 하고 도중에 검표(檢票)란 걸 했는데 또 집찰(集札)이라는 통과의례를 3중으로 거치는 것이 나는 싫은 거다. 들리는 바로 독일이나 스위스 같은 나라에선 개찰조차 없다던데. 우리는 왜 아직까지?
아직 개찰과 집찰이란 2 중의 통과의례가 엄존하는 우리 전철에서 자동 집찰기쯤이야 평행봉 놀이로 훌쩍 타넘는 사람이 심심찮게 있으니 어쩐다? 그런 우리가 스위스 같은 데 가서까지 ‘재미 내어 콩 볶다가 질솥 밑구멍 빼는’ 격으로 또 평행봉 놀이를 하다가 제 코 다치는 거사 당연하다 손치더라도, 우리나라를 망신시키는 건 곤란하다. 세계화 흉내를 낼 참이라면 누가 보든 말든 지킬 건 깜냥껏 지키는 ‘성숙’이 필요한 때니까 말이다.
‘성숙’ 얘기가 나온 김에 지하철 계단을 볼라치면, 내리 뛰는 사람이 많은 시간대엔 치 뛰는 사람이 적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여서 오르내리는 비율이 계속 어긋나고 있음을 본다. 따라서 어쩌다 약한 흐름에 휩싸인 사람은 장사라도 반대편 사람들 물결에 되밀리게 마련인데, 이렇듯 인파에 갇혀 곤혹스런 사람들을 구제할 성숙은 없단 말인가.
세차게 내리 꽂히는 폭포를 물고기가 타고 오르도록 만들어 둔 어도(魚道)처럼, 벽 쪽에 한 줄만 거슬러 다닐 확실한 외길을 구획해 놓으면, 천에 없이 북적대는 와중이라도 바쁜 사람이 되밀리진 않을 텐데 말이다. 이 어줍잖은 고언(苦言)이 실수가 아니었으면 오죽 좋을까?
이젠 실제 상황의 실수담 하나. 오리 방면에서 사는 나로서는 서울에 오갈 적에나 전철을 타는데, 정액권이란 제도 덕분에 매번 차표를 안 사도 되니까 매우 편리하다. 그리고 아기가 국수를 빨듯 그 조그만 입으로 차표를 쪼르르 빨아들였다가 찰칵하고 내뱉는 자동 개찰기의 단추 구멍 또한 앙증스러워서 귀엽다. 말하자면 나는 정액권 덕분에 ‘쪼르르 찰칵’하는 소리를 어릴 적 기차놀이만큼이나 속으로 즐기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화문역에 내려 집찰구를 빠져 나올 때 ‘쪼르르’ 소리 따라 내 몸은 가로 막대를 지났는데 어쩐지 ‘찰칵’ 소리도 없고 차표조차 안 나오는 거였다. ‘큰일 났군, 정액권을 잃고 달밤에 평행봉 노름을 할 수야?’ 싶은 강박관념에 쫓긴 나는 차표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사실 잔액이 소진된 내 표를 기계가 삼킨 줄도 모르고서......
잠시 후 톡 튀어 오르는 걸 내 표로 착각한 채 점잖게 그걸 집어들었을 밖에. 그때 내 뒤를 따르던 아가씨가 그 표를 날름 가로채며 “아니, 이 아저씨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손이 허전해진 나는 그녀의 눈이 왜 표독스러워졌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속 ‘굿에 간 어미, 떡 가져오기만 기다리듯’ 표 나오기를 기다렸더니 곧이어 또 ‘짜르르 찰칵’ 하길래 ‘옳지, 이거다’ 싶어 두 번째로 남의 표를 튀는 메뚜기 덥치듯 날쌔게 잡았다. 그러자 이번엔 눈을 부라린 젊은이가 그걸 낚아채며 참 불쌍하다는 듯 나를 향해 혀를 끌끌 차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도무지 어찌된 영문인공?’
‘아, 아이고!’
엉겁결에 정액권 도둑이 될 뻔한 나는 그만 달아날 구멍을 찾았으나 집찰기 단추 구멍만 보이지 쥐구멍은 아무 데도 없는 거였다. 우리는 언제쯤 가야 개찰기란 걸 없앨 수 있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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