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여행과 두꺼비

기행문 2005. 3. 11. 14:03

6. 여행과 두꺼비

탈출을 시도한다는 것은 불만을 내포함이다. 여행은 일종의 탈출이다. 인생도 여행이라면 탈출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까?

한정된 공간, 꽉 막힌 벽과 벽, 그것을 벗어난다는 데는 야릇한 흥분을맛볼 수 있었다. 적어도 규범의 속박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냐? 날은 개었다. 기적은 슬프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뒤로 두고 달리기보다는 옆으로 끼로 떠나는 지역에 미련은 없었다. 그만큼 인간이 모든 현실에 충실한다는 것은 자기 기만일 뿐이다. 슬픔을 안고 떠나는 길도 떠난다는 자체로서는 즐거움이다.

현실 탈출. 얼마나 환희로운 단어냐. 날짜는 몰라도 좋다. 바람이 따뜻했던 계절이라고만 해 두자. 옆자리엔 줄러리 사람들이 있었으나, 결국은 무관한 존재들이다. 홀로 왔다 홀로 돌아가는 인생 여정에서 그리 큰 의미가 있을까? 서러운 모든 것은 잊어버리지 않은 채라도 좋았다. 무덤이 있고 강을 건너고 무거운 다리를 지났을 땐 그런 것들은 다 잊혀 있었다.

요 속엔 얼음이 녹아내려 힘차게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가득히

긴 여정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허무를 읽는다. 그건 허탈과 통하는 술어다. 그 허탈이 여행에서 묻어온 것이라면 그래도 참을 수 있으련만. 탈출을 시도할 때는 어떤 새로움을 모색하고 있었으나, 기쁨보다 더 큰 슬픔을 안고 돌아왔을 때 거기 또 다른 슬픔이 기다리고 있으면 우리는 허망한 운명을 탓하게 된다.

찾아간 바다 마을에서 여인은 조개를 줍고 있었다. 물바람에 치마를 날리며. 퀭하게 뚫린 눈망울은 울음에 지쳐 붉어 있었고, 이젠 사랑도 미움도 다한 본디의 인간으로 환원되어 있었다. 끝없는 자기 산화에서 얻은 왜곡된 화합물이랄까? 사랑에 목메어 지친 밤들이 연륜으로 쌓인 갯마을에 버들피리는 뱀을 부르고 있었다.

뱀은 사악한 동물. 계절만 알고 사는 기형아. 그래도 두꺼비는 두 눈만 껌벅였다. 해야 할 말은 많아도 하고 온 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남은 건 돌아서며 웃는 하얀 이빨과 다시는 사랑을 않겠다던 피맺힌 진달래의 슬픈 대화.

보람찬 내일을 기다리며 꿈을 생할하던 어젯날들. 집착된 사념 때문에 시간을 불사른 산화의 생활. 재도 없는 빈 터 위에 남은 건 나뿐. 나를 발견하는 것도 나를 잊는 것도 알뜰한 사랑의 마을이었다. 그러나 이젠 더 큰 슬픔을 갖지 않기 위해서 고양이보다 더 악착한 이기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울지 않는 두꺼비가 쉬어야 할 곳은 늪밖에 없다. 늪에는 뱀이 있어 물을 천년을 두고 썩어 왔다. 사랑은 멀리 있어야 했다. 천리의 격리된 두메에서 기다리는 별이 있던 밤은 흐뭇한 쑥내음과 포근한 젖꼭지의 촉감이 있었다. 그러나 떠나던 날의 희열에 앞서 돌아서는 발길의 설음이여!

정주지가 없는 후조. 고향을 잃은 더벅머리. 늪에서 지새기엔 너무나 긴 밤. 물을 따라 강을 따라 흘러야 했다. 강은 끝이 있다. 물은 끝이 없다. 공허는 사념의 세계. 산화에 지친 영혼. 폭포를 찾아야 한다. 천 길을 역행하는 모치가 있을 그 역류와 의욕한 삶. 어제가 끝나고 내일이 있을 포말만 웅성이는 소용돌이. 사라질 물거품이 그렇게 슬픈 건 아니지 않느냐? 폭포, 폭포! 뒹구는 물줄기의 흰 빛깔이여. 그 앞에 아롱지는 고운 무지개. 인생의 물거품을 중합시키면 긴 사슬의 역사가 생기리라. 이걸 불러 일기장이라 서러운 이름을 명명했다. 그건 이제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다. 돌아서 왔던 날 갈기갈기 찢어서 불살라버렸다. 바지직 바지직 자기 산화의 잔재는 희멀건 잿더미를 쌓아 갔다. 지나간 날의 알뜰한 사연. 길고도 아름다운 옛날 얘기. 뱀이 주고 간 날름거리는 혓바닥에 수많은 비밀이 흘러갔다. 돌아오지 않는 강. 흐르지 않는 별. 스산한 바람이 불어간다. 그래서 또다시 꽃이 핀다. 두견새가 울다간 두메에 빨갛게 피맺힌 꽃이 핀다. 바람이 분다. 흉조의 흰나비가 하느적하느적 날아간다. 그래도 두꺼비는 할말이 없다.

돌아가야 했다. 돌아 와야만 했다. 슬퍼도 못내 그리운 천 리 길에 심어둔 수양버들은 없지마는 바람은 어제마냥 불고 있으리라.

바람과 함께 사라진 사나이. 하나뿐인 것만 골라 가려면 하필이면 불행과 설움은 두고 갈 것이 뭐냐? 돌아와 지쳐서 잠들었을 때 그것까지 말끔히 떼어 갔으면 차라리 이 밤이 짧아질 것을. 친구를 파는 못난 족속. 산화를 모르는 동물에게 내가 환원을 하더라도 산화가 뭔지 가르쳐 주고 싶다. 급격한 산화인 폭발 반응을.

탈출은 어리석음이다. 떠남은 슬픔이다. 돌아가지도 돌아오지도 말아야 한다. 산화 환원은 불시여야 한다. 바람은 부는데 봄바람이, 꽃은 피는데 빨간 꽃이. 두꺼비는 할말이 없고 북극성을 어째서 움직일 줄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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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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