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만 도자대장경, 옻칠 민화, 야생화… 내 욕심은 천하 대적이라
조계종 15대 宗正 성파 스님, 첫 대담집 ‘일하며 공부하며…’ 출간
“무소유? 나는 욕심이 천하 대적(大賊)이라. 무소유 같으면 나 자체도 이 세상에 없어야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 성파 스님의 일갈이다. 종단의 제일 높은 어른의 말씀이라면 고담준론과 선문답을 떠올리기 쉽지만, 성파스님의 말 속에 그런 건 없다. “나는 이루고자 하는 거라. 안 그러면 눈 감아버리지. 왜 밥을 먹고 약을 먹나. 그래서 나는 소유가 엄청나. 남의 것도 내 거라.”
성파 스님이 대담집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샘터)를 출간했다. 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가 2022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스님을 만나 대담한 내용을 정리했다. 책 제목은 스님이 직접 지었다. 도자기, 천연 염색, 야생화, 옻칠 민화에 뛰어난 예술 승려로 방대한 일과 공부를 해온 스님은 “출가 이후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며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삼라만상이 내 소유”라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스님의 욕심은 정신적인 것이다.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욕심, 국민들이 사찰에서 전통문화와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안식을 얻기 바라는 욕심이다.
1939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22세에 경남 양산 통도사로 출가했다. 그가 1980년대 초 통도사 주지를 맡게 된 계기는 통도사 일대를 위락 시설로 만들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1970년대 경제개발 이후 관광 붐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엔 사찰 땅 한복판까지 식당, 여관이 들어와 있었는데, 자원해서 주지를 맡은 성파 스님은 통도사 계곡 초입에 ‘산문(山門)’을 건립해 속세와 사찰의 경계를 새로 그었다. 현재 매표소로 쓰이고 있는 ‘영축산문’이다. “상인들에게 ‘음식점과 여관은 전부 산문 밖으로 나가라’ 했어요. 난리가 났지. 나는 주지를 사흘만 하다 말아도 지당대신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지당대신은 임금이 무슨 말을 해도 ‘지당하십니다’ 하는 사람, 요즘 말로 ‘예스맨’이라. 인간 한 놈(본인) 죽어서라도 천년 고찰 통도사를 살려야 한다는 각오였지요.”
스님은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기자가 스님을 인터뷰하면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을 청했더니, 스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묻는 이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충고와 위로가 쏟아졌던가. 스님은 말하기 쉬운 해결책 대신 경청을 답변으로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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