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 어서 한국을 구하라" 이승만은 호통쳤다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 출간… 사진 600여장 통해 90년 생애 한눈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90년 생애를 사진을 통해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과 함께 읽는 대통령 이승만'(안병훈 엮음·기파랑)이 출간됐다. 이승만의 사저(私邸) 이화장과 국립기록원, 연세대 부설 이승만연구원 등의 자료 1만장에서 고른 600여장에 이르는 방대한 사진 자료와 참고서적 30여종의 주요 내용을 집대성, 404쪽 양장컬러본에 담아 이해를 돕는다. 책은 건국 과정을 담은 1부 '건국(建國)', 6·25전쟁을 다룬 '호국(護國)', 전후 복구과정과 하야(下野) 이후를 정리한 '흥국(興國)', 성장기와 독립운동 과정을 그린 '복국(復國)' 등 4부로 구성됐다.

“7월 19일 0시 35분, 임종하셨습니다.”1965년 7월 19일 이승만은 독립운동가, 건국대통령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했다. 1964년 망명지 하와이에서 병석에 누운 이승만 전 대통령. /기파랑 제공
◆쿠데타 음모 종신형 죄수 이승만

이승만은 1898년 12월 고종황제를 퇴위시키려는 쿠데타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한성감옥에 갇혔다. 탈옥 미수로 종신형까지 선고받았던 그는 '특이한 죄수'였다. 기독교 신자가 되고, 옥중 도서실을 만들고, 영한사전과 책 '독립정신'을 집필했다.
미국 선교사들의 구명 노력 등으로 1904년 석방된 이승만은 정부의 밀사로 미국에 파견돼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났다. 이후 조지 워싱턴대에 편입해 2년 만에 졸업하고 하버드대 석사, 프린스턴대 박사학위를 받아 '이 박사'가 됐다. 귀국 후 YMCA 활동을 벌이던 그는 1912년 미국으로 망명한 후 독립운동세력의 중심인물이 된다. 4부 '복국'에서는 독립운동가로서 상하이하와이, 미국 본토와 유럽을 종횡무진했던 이승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왼쪽)6·25전쟁 중 이승만이 귀와 뺨을 가리는 방한모를 쓰고 워커 장군과 이야기하는 모습. (사진 오른쪽)미국의 시사주간지‘타임’1950년 10월 16일자 표지인물로 한복 입은 이승만이 실렸다. 이승만은 이 기사에서“우리는 절망하지 않았다. 우리는 실망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덮어놓고 뭉치자."

독립된 조국에 33년 만에 돌아온 노(老)독립운동가 이승만은 1945년 10월 17일 중앙청 광장에 운집한 5만여 청중을 향해 호소했다. '건국'의 시작이었다. 1부 '건국'에는 신탁통치 반대시위,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국 환영식에서
김구와 담소하는 이승만, 1948년 5·10 총선거에서 종로 을구 제1투표소에서 투표하는 모습, 제헌국회 구성과 대통령 당선 및 취임으로 이어지는 험난했던 건국 과정이 60여장의 사진·자료를 통해 선보인다.

1957년 경북 영주 부석사를 방문한 이 대통령 부부가 손을 맞잡고 기둥을 껴안으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학과 붓글씨가 뛰어났던 이 대통령은 부석사를 비롯해 전국 사찰의 편액도 많이 썼다.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

"오늘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은 누구의 책임이오?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 1950년 6월 26일 새벽 3시, 급박한 전황을 보고받은 이승만은
일본 도쿄의 맥아더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쳤다. 2부 '호국'에는 김일성과 스탈린 초상화로 도배한 전차가 다니는 서울 풍경과 인천상륙작전 후 서울, 평양, 원산, 함흥으로 진격하던 국군과 유엔군, 중공군의 개입으로 인한 1·4후퇴, 미국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 한국을 방문해 이승만으로부터 태극기를 선물받는 아이젠하워의 모습 등이 수록됐다.

한성감옥 수감 시절의 이승만(왼쪽에서 셋째). 이승만은 감옥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옥중 도서실과 학교를 열기도 했다. 동료 죄수들이 손에 성경을 들고 있다.

◆"워싱턴의 겁쟁이들 때문에…"

1954년 미국을 방문,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을 이렇게 비판했다. "수많은 미국인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으나 현명치 못한 휴전으로 한국 전선은 포화를 멈추고 일시적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 3부 '흥국'에서는 이승만이 판유리·시멘트공장, 화력발전소 등 산업시설과 대학교를 증설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모습의 사진이 실렸다. 또
부산 정치파동과 사사오입 개헌, 조봉암 처형, 보안법 파동 등 정치적 격동 끝에 결국 4·19로 하야해 하와이로 망명을 떠난 말년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김한수 기자(우리 큰애)

조선일보 2011.08.11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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