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20년 노력 끝에 1인당 물 사용량 3분의 1 줄여
2008년 봄, 인구 500만의 바르셀로나에 '물난리'가 났다. 60년 만의 가뭄이 18개월 지속됐다. 시 당국은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남쪽의 타라고나와 북쪽의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화물선으로 식수를 실어오기로 했다. 그렇지만 수송선이 싣고 온 물 950만갤런(약 1900만리터)은 62분 만에 동났다. 같은 해 미국 테네시주의 142명이 사는 작은 도시 옴(Orme)에선 자원봉사 대원들이 소방차를 몰고 인근 도시로 달려가 물 1500갤런(약 5700리터)을 채워 하루 10번씩 왕복해야 했다. 이 사건들은 인류가 21세기 들어 맞고 있는 물에 관한 풍경을 상징한다.
-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은 물에 관한 '무지'가 아니라 '무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487쪽)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물의 황금시대'였다. 세계 각국이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면서 인류는 수도꼭지만 틀면 나오는 물을 원 없이 썼다. 물은 인류의 수명도 연장시켰다. 1905년부터 1915년까지 미국 전역의 상수도 시설 수십 곳에 모래 필터와 염소 소독 장치를 설치한 결과 1900년 47세이던 미국인의 기대 수명은 1940년엔 63세로 늘어났다. 깨끗한 물은 도시 성장의 동력이 됐다. 미국 호텔 체인인 포 포인트 호텔은 객실에 비치된 생수에 이런 문구를 붙여놨다. "물이잖아요. 당연히 공짜입니다.(It's Water. Of Course, It's Free)" 그러나 저자는 이런 현상을 물에 관한 첫 번째 혁명의 결과, 그리고 안전한 물이 공짜로 무제한 공급되던 시대의 마지막 풍경이라고 말한다. 이제 곧 "삶의 방식, 일하는 방식, 휴가하는 방식, 물을 이해하는 방식 역시 바꿔놓을 공산이 큰"(26쪽) 제2차 현대 물 혁명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멀리 마야문명을 멸망시킨 가뭄 이야기를 꺼낼 것도 없이 바르셀로나와 옴시(市)의 예에서 보듯 최근 들어 기후변화와 더불어 물은 이제 더 이상 공짜가 아닌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저자는 "세계적 물 위기란 없다. 모두 해당 지역에 국한되기 때문"(475쪽)이라고 하지만 지난 3월 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생수 수요가 폭증하면서 국산 생수가 품귀 현상을 빚은 것을 보면 물 문제는 점차 글로벌화하고 있다. 2050년까지 세계 인구는 24억명가량 더 늘어날 것이고 결국 더 많은 사람이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희망은 있다. 저자는 "지구에 물이 할당된 것은 단 한 차례뿐이다. 그 물은 44억년 전에 지구에 왔다"고 말한다. 공룡을 비롯해 지구상에 명멸한 무수한 동식물이 그 물을 마셨고, 지금도 그 양은 그대로다. 즉 활용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인도·호주·유럽·미국을 넘나들며 '제2의 물 혁명'에 대비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역시 이윤을 따지는 기업들이 앞서가고 있다. IBM, GE, 코카콜라, 호주의 양모 세탁 업체, 라스베이거스의 호텔 침구 세탁 업체 등은 재생수를 사용해 물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여가고 있다.
저자가 모범 사례로 든 것은 라스베이거스다. 월 강수량이 1인치(2.54㎝) 넘는 달이 한 번도 없을 정도의 사막에 건설된 이 도시는 1989년 페트리샤 물로이라는 물 관리 책임자를 만난 이후 획기적으로 물 사용량을 줄였다. 가정과 골프장에서 잔디를 걷어내면 그만큼 보상금을 주고, 수영장이나 욕조 물은 배수관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모아서 재활용하며 세차용 수도꼭지까지 절수형으로 바꾸고 도로 중앙분리대의 잔디는 인조 잔디로 바꾸는 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결과 1989년 당시 주민 1인당 하루 348갤런(약 1322리터)을 쓰던 라스베이거스는 2009년 현재 1인당 하루 240갤런(약 912리터)으로 약 31%를 감소시킨 것이다.(103쪽) 저자는 이 대목에서 "세상을 단번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매일 조금씩 바꿔나가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제 곧 기업과 국가별로 에너지 소비량, 오염 물질, 온실가스뿐 아니라 물 관련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날이 올지 모른다는 저자의 지적엔 고개가 끄덕여진다.
찰스 피시먼 지음|김현정·이옥정 옮김 | 생각연구소|579쪽|2만원
2011.07.23.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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