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키우는 아들에 "양계도 책으로 내라"…
못말리는 저술광 다산
정민 교수가 새로 발굴한 편지, 시, 그림 등을 풀이한 '다산의 재발견'에는 학자, 교육자, 불교 연구가, 농사꾼 등 다양한 면모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학자, 교육자, 책 편집자
"머리를 눌러 억지로 곡식 낟알에 대주어서 주둥이와 낟알이 서로 닿게 해주어도 끝내 쪼지 못하는 (꿩 같은) 자들."
강진에 유배된 다산은 다산초당에 정착한 초기에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에서 제자들을 이렇게 평했다. 그러나 불과 3년 5개월 만에, 다산 제자의 시를 본 정약전은 "월출산 아래서 이런 문장이 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고 평할 정도로 다산의 제자들은 급성장했다. 저자는 다산이 ▲단계별 ▲전공별 ▲맞춤형 ▲실전형 ▲토론형 ▲집체형 교육 단계에 따라 제자를 길러냈다고 분석한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분업을 통한 저술'이다. 저술광(狂)이었던 다산은 제자들을 자료 수집과 검색, 초서와 정서, 수정, 교정 대조 작업과 제본 작업 등으로 나눠 끊임없이 책을 만들었다. 제자들의 1차 작업이 끝나면 다산이 총괄해 검토하고 수정 보완을 지시했다. '목민심서' '경세유표' '논어고금주' 등 강진 시절의 주옥같은 저서들이 이렇게 '집단 창작' 방식으로 완성됐다. 다산은 심지어 자식들이 양계를 한다는 편지를 보내오자 즉시 여러 책에서 닭과 관련된 기록들을 정리해서 '계경(鷄經)'으로 묶을 것을 권했을 정도로 책 내기를 좋아했다.
◆선승들과 선문답을 주고받다
"어찌해야 세상일에 쇄탈합니까?"(순암) "가을 구름 사이의 한 조각 달빛."(다산)
유학자로 출발해 천주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다산은 불교에 대한 식견도 높아 승려들을 가르칠 정도였다. 특히 스승과 제자처럼 교유했던 초의선사에게 논어를 가르치면서 "호랑이나 이무기가 핍박하는 듯이 해서 한순간도 감히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독려했다. 혹독하게 야단도 친다. "내 편지를 보고서도 여태 미황사에 눌러앉아 있으니 절집의 국수는 중하고 이 늙은이의 편지는 가벼운 게로구나." 초면에 주역 풀이를 하다 다산에게 '한 방'을 먹은 이후 다산의 강진 생활에 든든한 후원자가 된 혜장선사는 다산에게 '화엄경'의 제목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 다산은 대둔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과 암자의 내력을 기록하는 등 강진 생활의 상당 시간을 승려와 교류했음을 '매옥서궤' 등 새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 ▲
◆꼼꼼한 원예가 다산
"뜰 앞에는 가림 벽 한 겹을 몇 자 높이로 세워둔다. 가림 벽 안쪽으로 온갖 종류의 화분을 놓아둔다. 석류나 치자, 백목련 등을 각각 품격을 갖추어 놓아둔다."
다산은 꼼꼼한 농사꾼이었다. 초의선사가 그린 다산초당 그림엔 다산이 꿈꿨던 이상적인 주거지 모습이 담겨 있다. 다산은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아욱, 배추, 무, 가지, 고추, 마늘, 파, 미나리, 외를 심는 일까지 꼬치꼬치 지도한 후 "비용을 절약하면서 근본에 힘쓰고, 아울러 아름다운 이름마저 얻는 것이 바로 이 일"이라고 했다. 그저 취미가 아니라, 자족형 생활 경제를 위한 지침을 제공한 셈이다
다산의 재발견
정민 지음|휴머니스트|755쪽|4만3000원
김한수 기자(우리 큰애)
조선일보 2011.08.27
'전문기자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 40세, 착륙 아닌 이륙을 준비하라 (0) | 2011.08.27 |
---|---|
`거꾸로 파라, 트렌드가 될 때까지` (0) | 2011.08.27 |
화장실은 언제 집 안으로 들어왔을까? (0) | 2011.08.20 |
`맥아더, 어서 한국을 구하라` 이승만은 호통쳤다 (0) | 2011.08.12 |
사장님 살리는 김과장, 망치는 이도 김과장 (0) | 2011.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