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치욕·감정이입 고스란히 옮기려 애썼습니다"
16년 걸쳐 '사기' 완역한 김원중 교수
사기 130편 완역, 왜 시작했나 후회도… 중국도 못한 일, 혼자 해냈다는 자부심 커
"사마천은 당시의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 노력한 위대한 역사가입니다. 혁신적인 열린 시각으로 이민족들의 문화를 담았고, 자객(刺客)과 협객 그리고 편작 같은 의사들까지 모두 다뤘으니까요. 16년 작업이 끝나니 후련하기도 하고 세상의 평가는 두렵기도 합니다."
최근 '사기 서(書)'와 '사기 표(表)'(이상 민음사)를 펴냄으로써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130편을 완역한 중문학자 김원중 건양대 교수는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1995년 사기 번역에 뛰어들어 1997년 '열전'을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16년간의 작업을 모두 마친 것이다. 전설의 인물인 황제(黃帝)부터 사마천 당대의 한나라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 '서' '표'를 모두 합하면 번역본만 4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 '서'는 예의·음악·군사·역법·천문·치수·경제 등에 관한 이론과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표'는 '본기' 등에 분산돼 있는 인물과 사건, 그리고 '주연급'이 아닌 인물과 사건까지 연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김 교수는 "일종의 연표인 '표'는 청나라 때 정초(鄭樵)라는 학자가 '사기의 공은 표에 있다'고 할 정도로 사마천이 공을 들였지만 워낙 내용이 방대해 중국에서도 백화문 번역이 나오지 않았고 일본에서는 2년 전 학자들의 공동작업으로 완역이 됐을 정도"라며 "저도 이걸 왜 시작했나 싶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막상 완역하고 나니 혼자서 했다는 점에서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특히 이번에 번역된 '사기 서' 부록에는 사마천이 자신이 궁형(宮刑)을 당한 처지를 토로한 편지가 포함돼 있다. 사마천은 이 편지에서 "가장 좋은 것은 선조를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고, 그다음은 자신을 욕되게 하지 않는 것이며…"라며 치욕의 단계를 11가지 열거하는데 "가장 아래가 부형(腐刑·궁형)"이라고 말한다. 그런 치욕 가운데서 사기를 완성한 것이다.
- ▲ 만 16년간 매달려온 ‘사기’번역을 탈고한 김원중 교수. 그는 “사마천의 감정, 문학적 표현, 행간의 의미까지 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그래서 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사건엔 사마천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본기'에서 역사적으로 패한 항우를 한 고조 유방 앞에 배치하고, '표'의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에서도 초나라와 항우가 한나라보다 앞에 배치돼 있는 것부터 그렇다. 또 토끼를 잡고 난 후엔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의 고사로 유명한 한신에 대한 묘사에서도 사마천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김 교수가 번역에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도 바로 행간에 담긴 의미를 살리는 것이었다. 한 고조 유방의 첫 부인으로 다른 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도록 만든 여태후 본기를 번역할 때는 김 교수 역시 '심란'했고, 항우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다룬 부분에서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병사를 잘 쓰지 못한 죄가 아니다"는 항우의 마지막 육성을 옮긴 사마천의 뜻을 되새기기도 했다.
김 교수는 사기를 관통하는 교훈으로 '초심(初心)'을 꼽았다. "사기를 읽다 보면 안분지족(安分知足)이라는 말이 저절로 떠오릅니다. 분수를 지킨다는 게 요즘은 소극적 의미로 해석되지만 초심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 초심을 잃었을 때 어떤 불행이 닥치는지 사기는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16년 동안 매일 밤 9~10시 사이에 잠들어 새벽 2~3시에 일어나 번역을 했다고 한다. 주말과 방학은 물론 설과 추석 때도 오후엔 연구실로 출근했다. 재작년 14년 만에 처음으로 부인과 함께 영화관을 찾아 '트랜스포머'를 봤다는 그는 "멋모르고 달려들었기에 이 먼 길을 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2011.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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