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사진' 핼 부엘 책 출간

먹먹하거나 분노하거나

퓰리처상 수상작으로 본 70년 현대사

1985년 미국 보스턴 글로브의 스탠 그로스펠드 기자는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1년 전인 1984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전쟁에 내몰린 어린이를 다룬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그가 아프리카로 간 이유는 기근과 내전 때문.
그는 한 난민촌에서 극도의 굶주림으로 희망을 잃은 눈빛의 어린이와 엄마를 발견하고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이 아이는 수용돼 있던 난민수용소에서 세상을 떠났다. 에티오피아의 비극을 전 세계에 알린 이 작품은 그해 다시 한 번 그에게 ‘저널리즘의 노벨상’ 퓰리처상을 안겼다.

‘퓰리처상 사진’은 1942년 퓰리처상에 사진부문이 신설된 후 2011년까지 70년간 수상작들을 모았다. AP의 사진국장을 역임한 핼 부엘은 촬영 당시의 상황 설명과 각 해에 일어난 주요사건을 작은 사진으로 배치한 70년간의 현대사를 구성했다.

사진들은 끔찍하다. 우리 사는 세상이 원래 그랬는데 우리가 잠시 잊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6·25전쟁 당시 무너진 대동강철교에 하얗게 매달린 피란 행렬(1950), 베네수엘라 내전 당시 죽어가는 반군에게 종부성사를 주기 위해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로 나선 사제(1963), 케네디 암살범 오스왈드를 저격하는 현장(1964), 네이팜탄을 맞고 발가벗은 채 울부짖는 소녀(1973), 좌우익 학생 충돌 끝에 시신을 매달아 놓고 또 때리는 태국 학생들(1977), 이슬람혁명 후 쿠르드인을 집단 총살하는 정부군(1980)…. 전쟁과 분쟁, 학살은 도처에서 벌어졌다.

‘감동’도 빼먹지 않는다. 1973년 브라이언 랭커 기자가 촬영한 ‘탄생’은 기획의 승리. 당시 막 확산되던 라마즈 분만법으로 출산하는 친구 내외를 따라 산부인과에 간 랭커 기자는 진통 끝에 무사히 출산하고 기뻐하는 아기 엄마와 산모를 붙잡고 있는 아빠, 탯줄이 그대로 연결된 아기까지 한 프레임에 담았다. 생명의 탄생 순간을 리얼하게 포착한, 당시로써는 획기적 사진이었다.

퓰리처상 사진
핼 부엘 지음, 박우정 옮김
현암사, 332쪽, 5만5000원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2011.11.6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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