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묘에 벌초
제보자:이기수
때: 1983. 12. 06 채록, 곳: 경주시 건천읍 용명리 장승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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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데, 한번은
정만서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그렇지
어디 한 군데를 지번이랑 함께 가다가 하니까
건너 산 위에서
누가 초상 장례를 치르고 있는데
아주 참 부자 사람으로 보이거든.
상주들도 많고, 뭐, 백관들도 많고.
이 장례를 지내고 있는데
그 밑에 가만 보니까, 묵은 묘가 하나 있어
‘옳다, 됐다.’ 동행하던 지번에게.
“지번이, 우리 저기서 돈을 좀 벌어서 가세.”
주막에 가서 술 한 병을 사고
낫을 한 가락을 빌리고 해서,
장례 현장에 올라가 가지고
술 한 잔을 척 부어놓고
대성통곡을 하며 꺼이꺼이 우는 거라.
그 위에서는 묘를 쓰고 있는데, 당 꼭지에.
울면서, “이놈의 자손이 잘 못된 연고로
수십 년을 벌초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렇게 자손이 잘 되지 못하였는데,
여기 이놈들이, 남의 묘의 꼭지에다가
묘를 이렇게 감히 쓰고 있으니, 이것은
우리 자손들이 오죽 잘 되지 못했으면
이런 짓을 함부로 하겠느냐.” 말이지.
야, 이러고서 통곡을 한단 말이지.
그러고, 한 놈은 낫을 들고 벌초를 하거든.
낫을 가지고, 척척 벌초를 하니까
위쪽의, 초상 상주들이 그걸 가만 보니까
참, 기가 찰 일이거든.
(숨이 막힐 일이지요.)
그 놈들이 가만 보자 하니까,
또 허우대도 참 늘씬하게 생긴 놈들이
느닷없이 어디서 나타나 가지고
그렇게 하고 있단 말이지.
허, 그러니, 아래로 내려와 가지고
이제, 매달리며 사정을 하네.
“여보시오. 인사, 인사나 나눕시다.”
서로 수인사를 한 연후에,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묵은 묘인 줄로만 알고
여기 당신네의 묘 위쪽에다 묘를 썼는데,
이렇게, 자손들이 이렇게 살아
있는 줄을 미처 몰랐다.”고
“어쩌든지 우리를 용서해 달라.” 고
(예전에는 그 것을, 남의 묘 위쪽에 묘 쓰는 걸
허용치 않았지요?)
암, 허용하지 아니 했지.
“이놈들, 아무리 이것이 묵은 묘라 할지라도
너희가 우리 할아버지의 묘 위쪽에다
감히 묘를 쓰다니?” 그만 호령을 하고
그만에 이제 엄청 얼러대는 거라.
허, 저쪽 상주들이 구구히 사정을 하고,
그만, 그냥, 참,
”돈은 얼마를 줄 참이니까
어쩌든지 용서해 달라.”고,
“네놈들이, 저 하는
소이(所以)를 볼 것 같으면
꼭 너희를 가뤄야만 되겠는데
이미 우리에게도 잘못이 없잖아 있다.
수십 년 동안을 갖다가
묘를 묵혀 놓아두었으니까
잘못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러니까, 아, 그렇다면,
돈이나 톡톡하게 실어 보내라.
한 천 냥쯤 싣고, 저 경주 같으면
경주 읍의 어느 요릿집으로 보내 다오.”
이러는 거라.
그러니까 저 사람들도 이제는 좋지.
‘이제 일은 됐다’ 싶어 가지고,
그래서 그만 돈바리를 그만
그 요릿집으로 실어 보내는 거라.
이놈들이, 두 놈이 가서 이제
그날부터 포식을 하는 거라.
기생 아이들을 데리고 그만,
멋들어지게 놀지
그 돈을 다 쓰고,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먹고 노는 거야. 실컷 먹고 놀고 이제
여러 날을 이제 거기서 놀고,
그래 이제 그 돈을 다 쓰면, 이제 떠나거든
또 딴 데로 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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