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기 그지없는 아버지의 일기장… 왜 눈물이 날까

아들들은 스스로 아버지가 되면서 자신의 아버지를 돌아보게 된다. 신간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결혼 8년 만에 아기를 갖게 될 무렵, 40대에 접어든 저자는 고향집 벽장에서 30년 넘게 잊혀지다시피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꺼내 한 장 한 장 넘기며 자기 나이 무렵의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사무치는 사부곡(思父曲)을 부른다. "그때는 몰랐다."

저자의 아버지는 '무명인사'다. 경북 영천에서 아내와 함께 농사지으며 5남매 키우고 할머니와 어머니 모시고 살았던 평범한 농부다. 최종학력은 '국졸'(초등학교 졸업), 1980년 쉰한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 나이 열세 살 때였다. 그다지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는 삶이다. 그렇지만 1958년부터 1980년까지 꼼꼼히 적은 일기 속 평범한 삶이 주는 울림이 크다. 종신형 같았던 가난, 가족부양의 무거운 짐, 그 가운데 희미한 희망…. '근면, 자조, 협동'이란 새마을 구호가 세상 어디에나 붙어 있던 1970년대의 우리 모습,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행복해하던 그 시절의 모습을 돌아보며 적은 아들의 글에는 애틋함이 가득하다.

가난

"절박한 가정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못하게 해서 그도 수긍을 해야만 옳은 일인데 가정 사정은 불고하고 기어이 진학을 고집하여(…)"(1980년 1월) 장남의 대학진학을 만류하는 아버지의 마음은 찢어진다. 큰딸은 중학교만 마치고 고교진학도 못 시킨 터였다. 살림꾼 어머니는 사시사철 장날만 되면 야채라도 싣고 장터에 나간다. 그리고 어느 날 남편의 속옷부터 온 가족의 옷가지와 살림거리를 큰맘 먹고 사오지만 정작 본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타까운 아버지는 "다음 장날에는 꼭 비교적 나쁘지 않은 쉐-타를 사 입으라고 권했다"(1978년 11월)고 적었다. '좋은'도 아닌 '비교적 나쁘지 않은'이란 구절에서 눈을 떼기 힘들다.

기쁨

가족이 기쁨이다. 막내인 저자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급회장으로 뽑히자 아버지는 "이 마음은 한층 기특케 여겨진 일"이라며 "사실 지금까지 내 마음속으로 '어째서 영특한 머리를 가진 놈이 없는가' 싶어 안타까운 정도 없지 않았지"(1975년 3월 23일)라고 좋아한다. 근검절약한 덕에 살림이 조금씩 피는 것도 즐거움이다. 1977년 1월 결혼기념일을 맞아선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보다 살림도 많이 늘어나고 크게 걱정 없는 생활이 된지라 이날을 맞은 오늘의 이 심정은 자못 기쁘고 감개가 무량한 일"이라고 적었다.

절약 또 절약

저자의 아버지는 1958년부터 작고하기 직전인 1980년까지 가계부를 적었다. 자녀들의 학비를 '학계부'로도 적었다. '피리 200, 아동의 해 뺏지 100, 수학여행비 3780' 등 그 꼼꼼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그렇게 학교를 마칠 때마다 개인별로 "복애(장녀) 중학교 졸업했다(…) 이런데 3년간 쓰여진 돈이 128730원이었다"(1974년 1월)고 적었다. 돈·경제와 관련한 아버지의 철학은 뚜렷했다. 1956년 작성한 '예금(저금)의 원칙'엔 '남는 돈을 저금하려 말고 저금하여 남기도록 하자' '세금과 같이 생각하고 저금하되, 쓸 곳부터 미리 생각지 마라' 등 5가지를 꼽았다.


작은 행복

1976년 7월 3일. 이 날은 저자의 집에 '테레비'가 들어온 날이다.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TV 보다가 괄시당하기도 했던 자녀들은 "아버지, 산다고 말도 없더니 어떻게 샀능기요?"라며 좋아한다. 보리 20포에 해당하는 거금 11만 5300원을 들여 TV를 들여놓은 아버지는 "정말 이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성실히 살림을 꾸리어 남부럽잖게 가질 것은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적었다. 초가지붕을 걷어내고 기와로 지붕개량을 하고는 "사실 언젠가는 기와집을 만든다고 벌써부터 은근한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그 일이 오늘로 이루어진 일이니 이 아니 흐뭇할 것이냐"(1970년 4월)고 적고, 자전거를 한 대 더 산 후에는 "큰 놈 작은 놈 서로 눈치 보지 않고 한 대씩 타고 가는 일로 작은 놈은 그 밑에 두 동생들 가방까지 함께 싣고 가니 가고 오는 길손이 휴월(수월)케 된 이것이 기쁘다"(1974년 9월)고 썼다.

아버지의 꿈

"먼 후일에 가서 언제인가 자식들에게 살림을 맡긴 뒤 옛 이야기를 다시 하면서 '이 할망구야 우리 부부 일생은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하면서 서로가 웃으면서 여생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아끼며 후회와 미련 없는 그것이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1978년 1월 14일) 아버지의 일기는 1980년 1월 21일 "소한(小寒) 절후로 대단히 추웠다"는 구절이 마지막. 그 이틀 후 아버지는 별세했다. 꿈도 못 이루시고….


우리들은 문득 아버지가 된다
이병동 지음|예담|280쪽|1만3000원

김한수 기자

조선일보 2011.09.10.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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