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럭셔리' 사랑을 매도하지 마

선사시대~지금까지 장신구의 발전이 인류 문명을 견인
"사치는 욕망이 아닌 요구"


"사치는 유용성에 앞서고, 인간적이며, 필수적이며 영원한 것이다." 사치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인류 문명 발전의 견인차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저자는 프랑스 국립행정학교(ENA)와 고등상업학교(HEC)를 나온 경제학 박사로 프랑스의 경영자·창업가학교(EDC)의 럭셔리 브랜드 MBA과정 창설 멤버의 한 명이다.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리는데, 읽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사치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굴 껍데기와 생선 가시, 새의 뼈가 쌓인 더미에서 반지와 항아리, 장난감 등이 발견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이것들이야말로 바로 사치와 문명의 상징"이라고 말한다. 이는 "조리와 바느질은 동물적인 것에서 인간적인 것을 분리해내는 결정적인 단절 행위"라는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구대륙뿐 아니라 문명의 교류가 전혀 없었던 중남미 고대 문명에서도 온갖 사치스러운 장신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맞는 말이다.

저자는 고대 수메르에서부터
이집트, 히브리, 그리스, 로마 그리고 인도, 이슬람, 마야와 아스텍, 잉카 등 중남미 문명, 아프리카, 중국, 일본까지 두루 사치와 문명을 코드로 훑어간다.

아스텍 사람들이 의식 때 착용한 머리 둘 달린 뱀 모양 장식.
/뜨인돌 제공


사치는 이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문명에서부터 보인다. 이 지역에서 발견되는 작은 조각들에선 남성들의 머리카락이 길었다 짧았다 하고 여성들은 터번이나 챙 없는 모자를 쓰는 등 다양한 사치가 눈에 띈다. 이렇게 시작된 사치의 역사는 파라오 중심의 이집트 문명에서 탐미적 사치로 발전한다. 이어 그리스에서는 인본주의적 사치로 방향을 튼다. 신과 왕을 위한 사치의 대상이 인간 스스로를 향하면서 다양한 조각상이 등장하고 도기(陶器)에도 사람이 그려진다. 스스로를 가꾸기 위한 향수 기술도 발전한다. 고대 로마 문명은 진정한 사치의 탄생을 보여준다. 'Luxus(사치)' 'Luxuria(방탕)'라는 단어를 최초로 사용한 것도 로마인들이었다. 그리스 문명의 사치가 세련되고 지적이며 아름다움에 대한 헌신 쪽이었다면, 로마는 귀족과 지배 계층의 향락에 바탕을 둔 물질적 사치의 이미지를 후세에 전하게 됐다는 게 저자의 평가이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가 의복과 장신구에 사치세를 공포할 정도까지 치달았다. 저자에 따르면 여러 문명 중 유일하게 사치에 관해 특별한 입장을 취한 것이 히브리인들이다. 히브리인들은 성경을 통해 전 세계적인 영향을 남겼지만 종교 외에는 어떤 문명의 자취를 남기지 않았으며 사치를 율법을 통해 비판하고 금지한 민족이다.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낸다. "사치는 본능의 '욕망'이 아닌 마음의 '요구'다." 매 쪽 화려한 컬러 도판이 이어지고 동서고금 문명을 '사치'라는 키워드로 분석하는 것이 이 책의 장점. 그러나 정작 저자의 모국이자 럭셔리 문화·상품의 본국인 프랑스가 빠진 점과 각 문명을 나열형으로 정리한 대목은 아쉽다.

사치와 문명
장 카스타레드 지음|이소영 옮김
뜨인돌|352쪽|2만2000원

김한수 기자 출판팀장(우리 큰애)

조선일보 201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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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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