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품에 불과한 케네디 골프채가 77만달러나 하는 이유?
'체취'가 핵심인 특정인의 소장품, 눈 가리고 마시면 그게 그거인 와인… 우리가 평가하는 사물의 가치는 '본질주의'에 있다
2007년 워싱턴 지하철에서 한 남자가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43분간 클래식 음악 여섯 곡을 연주하는 동안 1000여명이 그 앞을 지났고, 남자가 벌어들인 돈은 32달러 남짓이었다. 이 남자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이었고, 들고 있던 바이올린은 350만달러짜리 스트라디바리였다.
다른 실험 하나 더. 저자는 피실험자들을 모아 놓고 '존경하는 인물을 떠올리라'고 했다. 사람들은 오바마, 조지 클루니 같은 인물을 떠올렸다. 그들이 입었던 스웨터를 산다면 얼마나 돈을 낼 것인지 물었다. 피실험자들은 상당한 돈을 내겠다고 했다. 다시 '스웨터를 되팔거나 남에게 자랑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다. 가격이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인물이 입긴 했으되 깨끗이 세탁한 것이라면'이라 물었다. 처음 값의 3분의 1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반응할까? 예일대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신간 '우리는 왜 빠져드는가?.'(원제:How Pleasure Works)에서 인간 행동 속에 숨어있는 쾌락 추구의 심리를 파헤친다.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심리에 대해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의 키워드는 '본질주의'다. 저자가 말하는 본질이란 '맥락' '스토리' '경험' 등이 녹아있는 개념이다.
앞에 예로 든 바이올리니스트나 스웨터 실험에서 사람들이 보여준 반응 역시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바이올리니스트는 정식 공연장에서 연주해야, 존경하는 인물의 스웨터는 그 사람의 체취가 그대로 남아 있어야 본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체취'가 중요하다 믿는 것은 특정인이 소유했던 물건과 접촉했을 때 그 사람의 본질이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일종의 '전염'(contagion)심리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케네디 대통령이 썼던 골프채는 1996년 경매에서 77만2500달러, 케네디 집에서 썼던 줄자는 4만8875달러에 팔렸다.
음식, 섹스, 물건에 대한 집착, 미술을 비롯한 예술, 상상의 쾌락, 과학과 종교까지 인간이 추구하고 몰입하는 쾌락에 대해 진화심리학과 철학 등 다양한 잣대를 들이대 흥미롭게 분석했다. 가령, 여러 차례 실험에서 밝혀졌듯 생수와 수돗물을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웬만한 사람들은 구별해내지 못한다. 심지어 유명 생수회사의 CEO도 자사 제품을 구별해내지 못했다. 와인 전문가들까지도 최고급과 보통을 구별 못하는가 하면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유명 미술관에 있는 유명 화가의 그림을 액자에서 떼어내 평범한 카페에 걸어놓으면 보통 사람들은 "유명 화가 그림과 닮았네"라고 반응한다. 발정기의 칠면조 수컷은 모형으로 만든 암컷의 머리만 보고도 흥분하지만 사람은 배우자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를 보더라도 성욕을 느끼지 않는다.
'본질주의'는 음식에 있어서도 발현된다. 마하트마 간디는 어느 날 염소 고기를 먹은 후 뱃속에서 염소의 영혼이 울부짖는 것 같다고 느낀 후 채식주의자가 됐다. 음식에 그 동물의 본질인 영혼이 들어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력식품을 밝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경향의 극단적 경우는 인육(人肉)을 먹는 행위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인간은 상상 속에서 쾌락을 얻는 유일한 동물이다. 미국인들은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면 가만히 앉아서 상상의 세계에 빠지려 한다. 어린 아이들조차도 누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 애쓴다. '해리포터' 시리즈 같은 판타지 소설·영화와 TV에 넘쳐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등을 보라. 실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쾌락을 즐기는 것이다.
풍부한 사례 연구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현상도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도 제시한다. 사례들도 재미있고 읽다 보면 "맞아" 하며 무릎을 칠 때도 많다. 하지만 많은 사례가 '본질주의' 하나로만 치닫는 서술방식은 지나친 단순화의 느낌도 든다.
◆저자 폴 블룸
예일대 교수로 발달심리학과 언어심리학 분야의 권위자. '데카르트의 아기' '언어, 논리, 개념' 등을 썼고, '아이들은 단어의 의미를 어떻게 배우는가'(How Children Learn the Meaning of Wor ds·2004)는 미국출판협회 우수도서상과 미국심리학회 발달심리학 분야 도서상인 엘레노어 매코비상을 수상했다. 2004년엔 예일대 최고 강의 교수에게 주는 렉스 힉슨(Lex Hixon)상을 받았다. 국내에는 '데카르트의 아기'가 번역됐다.
폴 블룸 지음|문희경 옮김|살림|358쪽|1만 6000원
조선일보 101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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