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샘터의 습속

창작 수필 2005. 2. 28. 07:11

13. 샘터의 습속



산에서 나무를 하는 초군(樵軍)들이나 소를 먹이는 초동들은 아무리 목이 말라도 골짜기의 옹달샘 물을 함부로 마시지 아니했으니 거기에는 일정한 절차와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먼저 가쁜 숨을 천천히 들이 쉰 다음 손에 들고 있던 날이 반짝이는 낫이나 도끼 같은 날붙이를 샘물에다 담가 놓고 정중히 읍을 하며,

“날아가던 까마귀 물먹으러 왔습니다.”

하고 세 번을 고한 다음에라야 비로소 물을 마셨다.

그렇더라도 마구 엎드려서 샘물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이 아니라, 떡갈나무나 망개나무 잎사귀로 깔때기 모양을 만들어서, 한 모금 떠서 천천히 마셔야만 했다.

아무리 목이 말라도 샘물에다 입을 대고 허겁지겁 마시다가 어른들에게 들키는 날엔 된 호통을 맞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첫째 군내 나는 입으로 샘물을 욕되게 한 죄요, 둘째는 찬물에도 노소가 있음을 어긴 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의식은 비단 초동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목이 마른 길손들도 낯선 샘터에 이르면 당연히 주머니칼을 담그고 꼭 같은 의식을 치러야만 했다. 이 조촐하나마 정중한 의식은 우리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불문율이었으니까.

날이 시퍼런 날붙이를 옹달샘 물에 담그는 뜻은, 그 물을 마셔도 좋은가를 확인하는 방편이었던 바, 만일 마셔서는 아니 될 샘물이라면,

요기에 시냇물 소리가....

“날아가는 까마귀 물먹으러 왔습니다.”

하고 세 번을 고하는 동안 날붙이의 색깔이 변색되는 걸 지키게 된다.

산골 샘물에다가 누가 독약을 넣기야 했으리요만, 행여 독뱀이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어떤 원인으로 수질이 변하지는 않았는지를 자기 눈으로 확인토록 하는 방편이다.

또 나뭇잎으로 떠 마시는 습속은, ‘찬물을 먹다가 체하면 약도 없다’는 옛말에 따라 급하게 마시다가 체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다.

샘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데도 우리 조상들은 이렇듯 과학적이고도 지혜로운 습속을 따랐다. 이러한 샘터에서의 습속은 우리 한국인의 멋이요 자연에 대한 경외인 것을......

 

월간 '생터'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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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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