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식초야, 나캉 살자
글: 사투리 씀
‘나캉 살자’는 투박한 사투리는 ‘행복하게 해 줄 테니 나하고 같이 살지 않겠느냐’고 살살 호리는 말이기에 누구나 이 소릴 할 때면 누구나 진솔해진다. 우리는 가금(家禽)이나 곤충과 더불어 뜸씨한테도 ‘나캉 살자’며 꼬시곤 하는데.....
건너 마을에서 강아지를 얻어 올 때도 ‘나캉 살자’며 다독이고, 고양이 새끼를 얻어 올적에도 ‘나캉 살자’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봄의 산자락에서 분봉(分蜂)한 벌떼와 만나는 건 횡재랄 수 있다. 나뭇가지에 뒤웅박 꼴로 매달린 벌 무리를 조심스레 모셔 와서 새 통에 깃들이게 하면 토종벌이 되니까. 하지만 무람없이 ‘횡재다’ 싶어 마구 퍼 담으려다간 성난 벌떼에게 된통 쏘이기 십상이다. 벌이 머리카락과 옷 속까지 파고들어 물고 뜯을 때 놈들을 쫓아 보겠답시고 눈을 감은 봉사놀음으로 헛손질을 치며 팔딱팔딱 뛰는 몰골이라니? 상상만 해도 가관이다. 견디다 못해 데굴데굴 뒹굴어 보지만 당장 ‘눈팅이가 반팅이가 되고’ 마는 걸 어쩐다지? 그러길래 무슨 일에나 차근차근 상황부터 판단하고 대응을 해야지!
예서 ‘눈팅이가 반팅이 된다’는 게 무슨 소린고 하니, 벌에 쏘이거나 싸우다가 눈두덩이 퍼렇게 부어 ‘반팅이’ 즉 ‘함지’를 엎은 꼴로 펑퍼짐해 진 걸 뜻한다. 이걸‘눈탱이가 밤탱이가 된다’고 말하는 건 온당찮으며, 사투리 어법에도 어긋나는 말이다.
어쨌든 벌을 함부로 건드리면 성난 벌떼는 붕붕 날아가 버리고, 횡재는 헛꿈이 된 채 ‘지붕 쳐다보는 개’ 꼴로 전락한다. 벌떼를 밀짚모자 같은 데 쓸어 담아 집으로 오기까지는 염불인 듯 진언(眞言)인 듯 ‘나캉 살자’를 계속해야 하며 발끝조차 조심해야 된다. 한 발짝만 헛디뎌도 만사휴의가 될 테니까 말이다.
또, 신접살림에 식초를 담글 때는 ‘촛밑’이란 효모부터 구해 와야 된다. 그게 비록 몇 숟갈에 불과할 망정 ‘식초의 씨’인 까닭에 공짜로 얻는 법이 없으매 돈 한푼을 주고서 신주처럼 모시는 게 전통인데, 이건 마치 서양 사람이 만년필이나 날붙이[刃物]를 선물할 때 동전 한 닢과 바꾸는 것처럼 불문율이다.
막걸리를 오지 병에 담고 촛밑과 함께 숯과 엿을 넣어 두면 ‘가양(家釀) 식초’가 탄생된다. 숯은 발효시의 불순물을 흡착하고, 엿은 단맛을 가미하는데 일조를 한다. 그런데 촛밑은 살아있는 뜸씨이므로 자주 흔들어서 공기와 접촉시켜 줘야만 된다. 따라서 밖에 나갈 때도 ‘나캉 살자’며 흔들어 주고 들어오면서도 ‘나캉 살자’며 자주 흔들어 줄수록 좋다. 진솔한 마음의 ‘나캉 살자’를 게을리 하는 날엔 모르는 사이에 ‘맛이 가는 수’가 있으니까.
초병으로 플라스틱 병 대신 목이 잘록한 오지 병을 쓰는 까닭은 그 표면으로 숨을 쉬기 때문인 바, 유리나 플라스틱 병은 부적격이다. 식초를 따라 마신 다음 막걸리를 채우고서 ‘나캉 살자’며 살살 흔들어 주면 ‘신맛이 더욱 괄게 된다’.
쉬울세라 물 탄 빙초산을 먹지 말고 이처럼 손수 담가 자시면 피부미용과 신진대사에도 좋으며 새벽녘 ‘홑이불 텐트’의 튼실함에도 다소 도움이 될 터이다. 정력에 이롭다면 탐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좀 좋다손 치더라도 넘치는 건 모자람만 같지 못하며 치아를 해칠 수도 있으니 맹신은 금물이고.
발효식품은 겨레가 상식해 온 먹거리다. 그중 식초는 이처럼 손쉽게 담가 먹을 수 있는 전통의 맛임에 틀림없다. 이로써 가양 식초의 장복(長服)을 권해 본다. 조금씩 요구르트와 섞어 들어도 되고 초무침이나 초고추장을 만들어 자셔도 좋은 바, 소문처럼 효험이 있는 지도 시험해 볼 일이고.....
“좌우지당간, 일단 한번 담가 보시라니깐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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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에세이'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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