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맞수와 문풍지
글: 사투리 월간 에세이 기고
‘이름이 좋아 불로초’라더니, 맞수란 것도 이름만 좋달 뿐 속으론 앙숙인 게 그 속성이다. 맞수끼리는 어떤 계기로든 서로가 상대보다 낫다는 걸 드러내 보여야만 직성이 풀리는 까닭에, 앞뒤 마을에서 제 깜냥대로는 내로라 싶어온 두 소목(小木)이 어느 날 솜씨 겨룸을 벌이게 되었다. 그래, 저 강 건너 누각의 여닫이문을 강 이편에서 눈어림으로만 재어 보고서, 제각기 문짝을 짜오는 내기를 했던 것이었다.
앞마을 목수가 살창 문 하나를 짜다가 왼쪽 문틀에다 척 끼워보니까 아주 빈틈없이 딱 들어맞는 게 아닌가. 먼발치로 건너다 본 것만으로 저처럼 꼭 맞게 짜는 눈썰미라니! 이어 뒷마을 목수 것을 오른쪽 문틀에 견줘보니까 약간 헐거운 듯 낙낙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자 앞마을 목수의 눈 귀퉁이로 ‘아무려면, 내가 상수지!’라는 듯한 자만의 그림자가 살짝 지나갔다.
그런데, 여닫이 문이란 문틀에 끼워 보는 것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달고 나서의 구실까지 봐야하는 법이기에, 설주에다 돌쩌귀를 박고서 양쪽 문을 여닫아본즉 ‘어렵쇼?’였다. 처음에 꼭 맞던 건 아예 여닫을 수조차 없을 만큼 삐걱거리는 반면, 낙낙하다 싶던 게 제대로 들어맞았으니 하는 말이다.
겉궁합이 맞는다고 속궁합까지 맞을소냐? 첫눈에 그럴듯해 뵈는 것과 속속들이 들어맞는 것의 차이를 예서 보는 바, 코밑이 바쁜 우리 생활의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말고, 가다가 잠시 뒤돌아볼 여유와, 한 발짝쯤 물러서서 두 발짝쯤 앞을 내다보는 자성(自省), 이게 현대인들이 가꿔야 할 덕목일 듯 싶다.
이 내기에서 앞마을 목수가 ‘한 수 배웠다’고 자인한 건 바로 ‘낙낙함’에 있다. 말하자면, 숫짝인 창문과 암짝인 문틀은 서로 여유롭게 맞아야만 찰떡궁합인데, 왼쪽 문은 아예 여닫기조차 못할 만큼 너무 기하학적인 게 탈이었다.
보통 새 문짝이 문틀보다 클라치면 쉬울 새라 헌 설주쪽에 대패질을 하기가 십상인데, 그것만은 곤란한 짓거리다. 왠고 하니 설주에 날붙이를 대는 건 주객의 전도인 까닭이다. 즉 기둥을 세울 때 대목(大木)이 다듬은 문얼굴과 소목(小木)이 거기 맞춰 짠 문짝 하고를 감히 비굔들 할까보냐. 아닌 말로 문짝이사 박살이 난다고 할지라도 다시 짜 달면 그만이지만, 문얼굴은 함부로 건드리면 동티가 나게 마련인 것을.
인간사도 이에서 벗어나지 말았으면 한다. 엄지와 검지, 버릴 것과 지닐 것의 귀천을 분별치 못하는 건 애달픔이다. 뭐가 무겁고 뭐가 가벼운지 가늠할 안목을 기르지 못하는 건 인도자들의 잘못일지니, 누가 주인이고 누가 나그넨지 판별할 자질을 키워 주는 훈련이 떡잎 때 필요한 소이가 여기에 있음이다.
끝으로 오른쪽 문짝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가 남은 숙제다. 그 문은 여닫기야 쉽다손 치더라도, 바람이 샐 틈새가 있으니 그걸 막을 방도만 찾으면 될 터인데.....
이 틈새를 얇디얇은 창호지 조각으로 거뜬히 메워 온 게 ‘문풍지’다. 그건 닥종이가 지닌 여유와 유연성을 한껏 살린 겨레의 슬기였다. 그런데 그 대물림하던 ‘문풍지’가 그만 알루미늄샤시한테 밀려나고 있으니, 굴러온 돌에 박힌 돌이 뽑힌 격이랄까? ‘부르르’ 소리를 내던 문풍지가 소리도 없이 밀려나는 건 대단한 안타까움이다.
고향에선 이맘때쯤 문틈마다 문풍지를 바르곤 했었지! 그 문풍지 소리가 정답던 저녁, 먼뎃개가 짖을 시각이면 어른들 몰래 퍼다 마시던 국화주의 향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때 살창문에 얼비치던 은은한 달빛은 더더욱 큰 그리움이다. 잊혀져 가는 고향이여, 야위어 가는 달빛이여, 사라져 가는 문풍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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