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다리 노래
글:사투리
봄이 되면 하늘 높이 날아올라 해맑은 소리로 환희롭게 지저귀며 보리밭 이랑에다 둥지를 트는 종다리는 우리와 비교적 친숙한 텃새다.
지방에 따라서는 종달새, 노고지리나 노구자리라고도 부르는 이 종다리의 모양은 말할 것도 없고 지저귀는 소리조차 제대로 아는 이가 드물어 애닯다. 종다리의 몸집은 참새보다 커서 전장이 15센티 정도 되며, 깃털은 논두렁이나 풀밭의 지면 색과 썩 잘 어울리는 담갈색 반점의 보호색을 띄고 있다.
노고지리 소리
이 보호색 때문에 ‘노고지리 개 속인다.’는 속담이 생겼고, 개는 또 어리석게도 노고지리 냄새만 따라다니다가 허탕 치기가 십상이다. 따라서 우리는 허욕을 쫓는 개가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다.
종다리가 흙무더기 위에 올라앉았을 때는 머리 깃을 뿔처럼 세우고 지저귀지만 하늘에 날아올라 신이 나면 30-40분씩 잔 날개 짓으로 끝도 없이 굳세게 지저귀기도 한다. 이는 사람과 달리 울대가 기관지에 있는 까닭에 한쪽 폐에서 공기를 다 토해내고 나면 곧장 다른 쪽 폐에서 공기를 뱉어낼 수 있도록 된 몸의 구조 덕분이란다.
종다리가 날아다니는 습성에는 2 가지가 있는데, 수평으로 날기보다는 헬리콥터처럼 수직으로 날아올랐다가 내려앉는 특성이 있어, 수놈이 지저귀는 바로 아래쪽 어딘가에 둥지가 있다고 보면 대과가 없다.
그러나 실제는 나선형을 그리며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내리기 때문에 쉽사리 둥지를 찾기는 힘들다. 종다리가 하늘을 날아오를 때 지저귀는 소리와 하늘에서 독수리처럼 정지한 듯 느리게 맴을 돌며 청아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다를 뿐만 아니라 작은 원을 그리듯 나선형으로 내릴 때 내는 소리까지도 다르다는 데 한층 묘미가 있으며, 종다리가 지저귀기를 그치는 것은 지상에서 5 미터쯤 되는 높이에서다.
비록 자기 테리터리 부근에 내려앉았다 하더라도 까치처럼 곧바로 둥지로 날아들지 않는 조심성까지 지녔다. 보통은 둥지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 앉았다가 둥지 부근으로 수평으로 날아가서는 5-6 미터를 꿩처럼 발빠르게 기어서 둥지로 찾아드는 지혜도 지녔다.
종다리가 지저귀는 것은 자기 테리터리의 고수를 위한 방편이란다. 즉, 종다리는 다른 놈들에게 ‘여기는 내 땅이다.’하고 소리 높여 외친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따라서 자기 테리터리에 침입해 들어오는 놈이 있으면 끝끝내 싸워서 쫓아내고야 만단다. 학자들의 해석이야 어떻든 간에, 종다리의 지저귐은 번식기를 맞아 미칠 듯이 끓어오르는 불타는 기쁨의 발로요, 감당할 수 없는 내적 욕구의 분출이랄 수 있다.
종다리는 짝짓기를 하고, 둥지를 틀며, 병아리를 기르는 기간 동안만 쌍쌍이 독립 생활을 하다가도 늦여름부터는 떼를 지어 군서 생활을 하는 것 또한 인간이 배울 점이다. 헤어져야 할 때는 헤어지고 모여야 할 땐 모일 줄 알아야 하거늘 간사한 인간은 맺고 끊음이 불분명하지 않은가? 보다 높이 날아올라 지저귀는 놈일수록 보다 넓은 테리터리를 차지함도 엄연한 생존경쟁이요 위계질서의 순리에 맞는 행위다.
번식기간은 보리이삭이 팰 무렵인 4-5월이 적기이며, 보리밭에 숨은 강아지 등이 보일락말락할 때가 절정의 나날들이라 이 기간에 노래하는 소리가 우리를 가장 환희롭게 한다. 종다리 둥지는 마른 풀뿌리나 풀잎을 모아다가 직경 6센티미터쯤 되는 종지 모양으로 튼다. 둥지의 위치는 보리밭이든 풀밭이든 무성하게 자란 곳보다는 오히려 중간 이하로 자라 햇볕이 잘 드는 곳을 택하는 습성이 있다.
알은 4-5개가 보통이고 10-13일만에 부화되며 부화 된지 50일이 지나야 암수의 구별이 가능해진다. 종다리는 수놈만 신나게 지저귀며 암놈은 반벙어리일 뿐이다. 아기 수놈도 선천적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미 새가 부르는 노래 소릴 듣고서야 배운다니 학습은 인간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조류의 세계에까지 다를 바 없단 말인가? 알면 가르치고 모르면 배워야지!
종다리의 아름답고 기쁨에 들뜬 듯한 노래 소리는 예로부터 시가(詩歌)에도 오르내렸고 운작(雲雀)이라 하여 고고한 선비나 산사의 수도자가 어린 새끼를 순치 시켜 가까이 두고 그 청아한 봄노래를 즐기기조차 했더란다. 어떤 경지에 이른 수도자는 맑은 봄날 들판에 조롱을 들고 나가 하늘을 날며 맘껏 지저귀게 한 후에 저녁이 되면 데리고 들어왔다니 새와 인간이 이만큼 교감할 수만 있다면 부러울 게 없을 성싶다.
종다리는, 이른봄엔 풀의 햇싹을, 여름에는 애벌레나 곤충, 거미, 선충 따위를 비롯하여 달팽이류도 먹지만 주로 낟알이나 풀씨 따위를 먹고사는 잡식성 조류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종다리는 4-5월의 맑으면서 바람기가 없고 기온과 습도가 너무도 알맞아 새털 같은 사랑을 도저히 참고 견디지 못할 때 신새벽부터 지저귀며 때로는 밝은 달밤에도 춘정(春情)을 못이긴 듯 노래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중앙기상대의 관측 자료에 보면 4월 8일부터 10월 9일까지 계속 지저귀는 것처럼 기록돼 있어 필자의 관찰기록인 4월 5일부터 6월 25일까지와는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동물소리 효과음의 오용 사례 표 참조)
물론 필자의 관찰기록에도 맑은 가을 하늘에 떠올라서 지저귀는 종다리 소리를 들은 날이 한글날 오후를 비롯해 간헐적으로 10월 12일, 11월 8일, 1월 29일 및 2월 23일 등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날의 기온이나 기상이 봄날 같았기 때문이지 4월서부터 그때까지 계속해서 지저귀었다는 뜻이 결코 아닌데 말이다. 말을 바꾸면 제비는 4월 보름 경에 왔다가 10월 보름 경에 강남으로 가는 것이 정상이고, 목련이나 개나리는 봄날에 피는 것이 정상인데 가을날 어쩌다 때아니게 목련이 피었다고 토픽 감이 되는 것을 마치 정상인양 기록하는 사례와 무엇이 다르랴? 가을에 피는 목련나무란 없듯이 삼복에 지저귀는 종다리는 없는 법이다.
번식기가 끝나고 삼복이 오면 종다리들은 털갈이를 하며 이때부터 수놈은 대체로 반벙어리가 되고 말기 때문에 중앙기상대의 관측기록은 수정돼야 마땅하다. 중앙기상대가 설마 텃새인 종다리를 철새로 오인했을 턱이야 있을라고? 예외는 예외로 삼아야지!
환경의 변화든 환경 오염 때문이든 우리 주변에서 종다리를 쉽게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보리피리 소리 속에 섞여드는 종다리 노래를 싫도록 들어볼 방도는 없을까? 어떻게 해야 종다리 노래가 저 하늘 가득히 피어나게 할 수 있을지? 더 늦기 전에 무슨 손을 써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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