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범의 차반

창작 수필 2005. 4. 3. 07:01

31. 범의 차반



대부분의 동물들이 기본적 허기를 채우는 시간은 일출 및 일몰시간과 관계가 깊다. 꿩들은 먼동이 틀 무렵부터 해뜨는 시간까지와 해가 기울 때부터 노을이 내리는 시간까지, 하루 두 번씩 대단히 왕성하게 먹이를 찾는다.


자연의 먹이사슬은 참으로 오묘하여, 이른봄 낮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면 꿩들은 알을 품는다. 꺼병이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것과 때를 맞추어, 지난가을에 흙 속에 낳아 둔 메뚜기 알도 애벌레가 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꺼병이와 메뚜기는 때맞추어 함께 자란다. 일조 시간이 길어질수록 풀잎에서 톡톡 튀는 수많은 새끼 메뚜기를 어머 꿩과 아기 꿩이 오순도순 잡아먹으면서 자연의 균형을 유지시켜 나간다. 꺼병이가 자라면 메뚜기 새끼도 자라고 메뚜기 새끼가 자라면 꺼병이도 커서 하루에 잡아먹는 숫자는 어릴 때나 커서나 엇비슷하다.

산 옆 골짜기에서는 곤충의 애벌레와 개구리가, 새나 뱀이, 솔개와 독수리가 먹이사슬에 따라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생존의 드라마를 펼쳐간다.

한편, 높은 산 깊은 골에 서식하는 범은 다른 동물처럼 매일같이 두 끼니씩 찾아먹지 아니하고, 며칠만에 한번씩 ‘소나기밥’을 먹기 때문에, 언제고 먹을 것이 생기면 그 자리에서 한꺼번에 처치해 버리는데, 그런 수법을 일러 ‘범의 차반’이라 한다.

육식동물 가운데 승냥이나 사자와 같은 야수들은 여러 마리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먹이 감을 포획할 때는 얼러서 몰이를 하거나 포위망을 압축하는 수법을 쓴다. 이 때 야수들은 공동의 포획물을 놓고 서로 맛있는 부분을 차지하려고 몹시 으르렁거리며 회식을 한다.

야수들의 회식이 집단 구성원들 간의 먹이 분배를 둘러싼 작은 싸움이라면, 꿩들의 그것은 비교컨대 오손도손한 모임이다.

우리가 일을 하다가 보면, 자기 의견이나 주장에 동조해 주는 동료가 있어 자기 의견이 빛을 발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제대로 주장을 펴보지도 못하고 주위로부터 부정을 받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내면적 불만을 잉태하게 되어 어딘가 속 시원히 털어놓을 곳을 찾게 마련이다. 이런 때 회식의 기회가 주어지면, 우선 먹고 마신 다음 떠들썩함으로 번져간다.

그런 것을 빼면 회식은 즐거운 일이다. 봄이나 가을에는 야외에서의 회식이 제격이다. 단합대회라도 좋고 운동경기를 해도 좋다. 분위기가 익으면 목청껏 노래를 불러도 좋고 동료나 상사가 개울물에서 수중 산책을 즐기게 밀어 넣어도 좋고, 두고두고 이를 화재로 삼아도 좋다.

우리들의 회식이 범의 차반이라도 좋다. 어차피 한 달에 한번 정도라면 범의 차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범의 차반이라도 서로 터놓고 얘기할 수 있고, 너털웃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살아 있음에 생기를 불어넣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들의 회식은 야수의 그것이 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꿩들의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야수의 것과 꿩들의 것을 알맞게 섞어 격정과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면 좋을 듯 싶다.

터놓고 얘기하며 한 솥 밥을 먹는 조직원간의 결속과 동일 목표를 향해서 뛰는 구성원간의 개별적 역할을 자각하게 할 수만 있다면 회식은 더욱 값진 것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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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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