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요강과 사투리사전

 

 

최 선비님! 한동안 적조했소이다만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그런데 혹시 :-란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재미 내 콩 볶다가 지리솥 미자바리 뺀다에서 지리-이나 미자바같은 말은요? 선비님이야 당연히 기억하시겠지요.

우리 어머님 세대는 꽃가마 타고 시집갈 때, 소피가 마렵거나 가마가 흔들리는 서슬에 멀미가 나면 가마 속에 감췄던 -요강’<길요강>을 꺼내 생광스레 썼다던데, 박물관에 가봐도 그 앙증맞은 실물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고작 오륙십 년 전에 지천이던 그것들이 대체 어디로 숨었을까요.

위에서 지리솥은 질흙으로 만든 초벌구이 솥을, ‘미자바미주알을 뜻하는 경주말인데, 무쇠솥도 안 쓰는 세월에 웬 요강 타령이냐고 핀잔하시면 저야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외다.

그런데 얘야, 소젖 한 종지 먹어래이.” 하시는 할머님과, “우유 한 잔 먹어라.”는 어머님 그리고 밀크 한 컵 마시라.”는 누님 말씀이 있다고 칩시다. 여기서 소젖이나 우유밀크가 동일한 것임에도 사람들은 소젖은 창피한 말로, ‘밀크는 세련된 걸로 치부하다니? 그게 탈일 밖에요. ‘먹는다는 말을 두고도 묵아라, 묵어라, 먹어라고들 하니 발음에도 세대 차가 있는 모양이네요.

그래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속담이 새삼스러워집니다 그려. 경주지역 안에서도 굳이 이름을 짓는다면 산중 말씨야지 말씨로 나눔 직한데, ‘묵아라는 전자 쪽에, ‘묵어라는 후자 쪽에 가깝다는 게 언어학자들 견해지요. 그에 반해 오와 우는 왜 바뀔까요? 경주에서는 묵고가 서울서는 먹구꼴로 굳어져, 요새 유행하는 댁에도 있수?”란 말은 댁에도 있소.”로 변한 서울식 사투릴 텐데요.

우리가 어렸을 때, 서울물 좀 먹었답시고 서툴게 서울 억양 흉내를 내면 보리경사쓴다고 핀잔했었지요. 그런데 어떤 푼수는 한 술 더 뜬답시고 ? 국이 싱겁네, 기렁쫌 도고<다오>󰡕하는 소리로, ‘짐치김치라 해야 유식해 보이듯이 지렁’<간장>기렁이라 했다는 우스개도 있었으니, 이런 걸 일러 보리경사가 아니라 󰡔봄보리경사󰡕라 해야 마땅하겠지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도 처음 서울 가서는 보리경사를 썼답니다. 고백하건대 제게 가장 어려웠던 대목은 허구체였습니다. ‘말허구’, ‘밥 먹구라 해야 서울식인데 저는 이를 꼭 말하고’, ‘밥 묵고라고 를 고집했던 통에 촌놈 표낸다고 핀잔 깨나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꾸 서울말씨만 듣다보면 모르는 새 그걸 따르게 되고, 그런 와중에 고향 사투리는 민망스럽게도 차츰 잊어버리나 봐요.

반면, 고향 사람들도 나름대로 교통과 TV의 발달 때문에 객지 사람 못지 않게 사투리 쓰기를 꺼려한답디다. ? 사투리는 이제 촌스럽다고 믿게끔 세월이 변한 거지요. 그래서 객지는 객지대로 고향은 고향대로 사투리가 보리경사공해에 속속들이 오염됐으니, 앞으로 우리는 어딜 가야 때묻지 않은 토박이 사투리와 만날 수 있을는지요?

배속에 잉태한 아기를 두고 표준말은 가지다하나에다 통합시키고 있지만, 우리는 그 한 쪽을 떼어내 가지이다로 장음화하므로 써 지다와 확실히 구별할 뿐더러, 표준말의 부서-지다를 우리는 󰡔-지다󰡕 󰡔뿌사:-지다󰡕󰡔뿌자:-지다󰡕 등으로 다양화시켜 쓰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듯 우리 토박이말은 어휘의 다양성도 유달스럽지만, 같은 표기를 두고도 발음의 고저장단으로 여러 가지 뜻을 표현해 낼 수 있음은 물론, 그런 변별력 때문에 특이한 낱말들과 표현방법을 구축해 내린 것이지요.

말이 난 김에 하나만 더 여쭙시다. 최 선비님께서 고무신을 안 신기 시작한 게 언제부턴지 기억 나십니까? 송편이 우리 나라 떡이듯이 막걸리는 우리 술이고 고무신은 우리 신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최 선비님! 최근 신발 시장에서 고무신의 점유율이 고작 1% 밖에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는 기분이 묘해지네요.

고향말 가운데 우리가 지금도 흔히 쓰는 노고지리간대로’(함부로) 같은 낱말을 사전에서는 벌써 옛말로 취급한지 오래고, 나아가 ’<구멍>이나 ’<나무> 같은 말도 컴퓨터에다 고어체로 밖에는 입력시킬 재간조차 없거든요.

가마가 없어지면 뒤쫓아 -요강:-’<가마멀미>란 말이 없어지듯이 고무신이 사라짐과 더불어 수많은 토박이말도 소멸될 위기를 맞으려나 봅니다. 그렇게 소멸된 사투리들은 어느 날 망각의 통발 속으로 들어가고 말더군요. 통발이란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운 구조적 속성을 지녔으니 한번 들어가면 함흥차사가 되는 게 분명하겠지요.

알다시피 경주말은, 각각 80 리 상거인 울산이나 영천말과도 구별되며 포항말과도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남들은 그게 그거라고들 생각하니 탈이네요.

최 선비님! 저에겐 한 가지 고약한 의문이 있습니다. 중국말은 사성(四聲)을 철저히 따지고, 다른 외국어도 악센트를 매우들 중시하는데 반해 국어사전에는 왜 억양표시가 없는지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제주나 평북처럼 도단위의 방언사전은 나온 모양입디다만 지역별 사투리 사전은 눈에 잘 띄지 않습디다. 더구나 국어사전에 오르지 않은 경주말이 저토록 흔천인데도 그게 시나브로 없어지는 걸 방관할 수야 없잖습니까.

따라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경주말이 망각의 통발 속으로 사라지기 전에 그걸 모아 정리하는 작업일 듯 싶어지는군요. 농약 등쌀에 미꾸라지가 사라지고, 뒤따라 통발 또한 삭아버린지 오래고 보면, 사투리를 모으고 정리하는 일을 더 늦출 수야 없지 않을까요. 앞으로 십 년만 지나고 보면 모으고 싶어도 모을 수 없게끔 토박이 노친네조차 찾아내기 힘들 테니까요.

최 선비님! 장단음은 물론 고저조차 명확한 까닭에 변별력을 갖춘 󰡔경주 사투리사전󰡕 하나를 우리 함께 엮어 보면 어떨까요? 제가 모아 둔 단어만도 수천 마디는 넘거든요. 방대한 작업이니 만치 어려움이야 따르겠지만 우선은 뜻을 같이할 사람부터 모으는 게 좋겠지요. 언어학자와 토박이, 그밖에 뜻 있는 분들의 공동작업이 되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렇게 󰡔사투리사전󰡕을 엮어 놓을라치면 그게 책이 됐건 CD롬이 됐건 쓸데야 많을 듯 싶군요. 이를테면 신라가 배경인 역사 소설에도 쓰일 테고, 언어학자들이 신라어를 재구(再構)하는 연구 자료로도 쓰일 게 분명하지 않겠는지요.

그럼 선비님! 잔재미 속에 즐거운 나날 보내시기 바라며, 오늘은 이만 총총.....

 

경주춘추 통권51995년 봄호 (1995. 5.10발행) 95

 

 

28. imbc에 올린 글

일밤-브레인서바이버 우리말 쓰자


지난번에도 한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쇠귀에 경 읽기처럼 귀담아 듣지를 않아서 쓴소리 한마디 덧붙인다.

출연자들의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국적 없는 말인 ‘파이팅’이라 외치자고 김용만 진행자가 제안해서 16명이 입을 모아 떠드는데, 그 말은 우리말이 아닌 혀 꼬부라진 외래어인 바, 그런 말은 당장 없애고, 앞으로는 오래전부터 써내려온 순 우리말인 ‘우워사사’라고 외칠 것을 당부한다. 우워사사!!!



우리 모두 함께 세상에 퍼뜨립시다.


우워사사 [우′우워사사′아] (감탄사) 여럿이 힘을 합쳐 선수들의 기운을 돋우려고 응원할 때 내는 소리. 힘내자, 힘내라는 뜻. 국적도 없이 혀 꼬부라진 말인 ‘파이팅’ 대신 순화시켜 써야할 뿌리 있는 순우리말. 수십 년 전부터 써 내려온 순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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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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