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원하신다" 한마디에 떠난 '어웨이 전쟁'

  • 김한수 기자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 신작
십자군 3년 행군에서 예루살렘 정복까지 생생하게 담아내다

그 단호함, 냉정함, 통찰은 명성 그대로다. 첫 문장부터 비장하다.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74)가 돌아왔다. 이번엔 십자군 이야기다. 서방과 이슬람권의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꼭꼭 씹어 소화한 후 자기 식으로 호쾌하게 재단하는 방식은 변함이 없다. 그런 매력 덕에 출간되자마자 벌써 각종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다.

시오노 나나미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이야기를 '카노사의 굴욕(1077)'부터 보여준다. 교황이 '파문'을 풀어달라며 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눈 속에 사흘간 맨발로 세워놓았던 이야기의 후일담이다. 이때 굴욕을 겪었던 황제 하인리히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를 두고두고 군사력으로 괴롭힌다. 그렇지 않아도 유럽은 제후들 간의 전쟁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 때문에 교황은 로마에 머물지 못하고 도피생활 끝에 죽었다.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는 "그레고리우스는 강단은 있었으나 정치적인 인간은 아니었던 것"(16쪽)이다.

그레고리우스의 뒤를 이은 것이 십자군 전쟁을 제창한 교황 우르바누스 2세. 역시 하인리히 황제의 군사력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던 그는 1095년 프랑스 클레르몽에서 공의회를 열어 일대 반전을 꾀한다. 이슬람세력에 압박당하던 비잔틴제국 황제의 원군 요청을 듣고 '글로벌한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24쪽)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 신의 대리자로서 교황만이 할 수 있는 언급이었다. 순례를 겸한 이 전쟁에 참가하면 죄를 씻어주는 '장부 정리'라는 당근과 서약 후 출발하지 않거나 중도에 돌아오면 파문이라는 채찍이 함께 준비됐다. 주도면밀한 교황은 전쟁 선언 전에 미리 아데마르 주교와 툴루즈 백작 레몽에게는 전쟁 참가 내락을 받은 상태였다. 적대관계인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프랑스 국왕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이듬해 봄엔 로렌의 공작 고드프루아,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블루아 백작 에티엔, 플랑드르 백작 로베르,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등이 가세했다. 가슴이나 등에 붉은색으로 만든 십자가를 부착한 군대는 그렇게 예루살렘을 향해 출발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제창으로 시작된 십자군은 출정 3년 만인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했다. 예루살렘 점령 후 전리품을 챙기는 십자군 병사들을 담은 그림.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십자군 이야기' 1권은 1차 십자군이 3년의 행군 끝에 1099년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다시 20년 가까이 유지하는 '어웨이(away) 전쟁'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막상 전쟁을 벌였지만 홈팀도 어웨이팀도 서로에 대해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서로를 막연히 '프랑크인' '아랍인'이라 불렀다. 촘촘한 철제 고리로 만든 '호버크'와 강철 갑옷, 투구로 화살을 튕겨내는 십자군의 무장은 이슬람군을 떨게 했고, 중동지역에 흔한 석유를 이용한 일종의 수류탄인 '그리스의 불'은 십자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이슬람인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한 점은 십자군이 '종교'를 이유로 싸움을 걸어왔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십자군에겐 어려움이 많았다. 원군을 불러놓고 보스포러스해협을 건너게 해주는 조건으로 '충성서약'과 점령지를 자신에게 넘기라는 비잔틴 황제의 요구와 제후들 간의 갈등과 경쟁심도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십자군에게는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이슬람측이 이 시기에 열세였던 것은 단지 궁극적인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은 홈에서 싸우면서도, 어웨이에서 싸우는 불리함을 알고 있던 십자군에게 성공을 허락했던 것"(269쪽)이라는 게 저자의 평가다.

박진감 넘치는 역사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인간군상들의 갈등, 속임수, 리더십 등을 잡아채는 시오노 나나미의 글솜씨는 이 900년 전 이야기를 현재형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십자군 이야기'는 일본에서 올해 중 완간 예정이며 내년 상반기 3권으로 국내에서도 완간될 예정이다.

십자군 이야기1

시오노 나나미 지음|송태욱 옮김|문학동네
348쪽|1만3800원

김한수 출판팀장(우리 큰애)

조선일보 2011.07.16.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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