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선망

전문기자 글 2011. 5. 21. 06:58

[편집자 레터] 작은 羨望(선망)

김한수 출판팀장

문화의 힘은 '선망(羨望)'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마디로 부러워하는 마음이지요.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옥을 보존하기 위해 당국에서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지금 서울 삼청동·안국동엔 전통 한옥을 개조한 레스토랑, 카페가 즐비하고 이젠 경복궁 서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불과 20년 전까지도 '보존' 대상이었던 한옥이 이제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여전히 '돈' 만큼 큰 선망의 대상은 없겠지요. 하지만 과거 선망의 대상이 크고 위대하고 유명한 것 일색이었다면, 점차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을 귀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늘고 있습니다. 최근 출간된 '매일 너와 이 길을 걷는다면'(생각의나무)에서도 그런 사소함에 대한 행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매일 너와…'는 면목동·숭인동·가리봉동·중림동 등 오래된 골목길 풍경을 적은 책입니다. 스페인 산티아고 가는 길, 제주도 올레, 북한산 둘레길, 서울 성곽길 등 '길 걷기'와 웰빙에 대한 선망이 이제 동네 골목길로도 이어지는 느낌입니다.

몇 달 전 출간돼 관심을 모은 '두 남자의 집짓기'(마티)도 고대광실 멋있는 집이 아니라 70평짜리 땅 한 필지를 두 가족이 공동으로 구입해 마당과 다락방 딸린 나무 2층 집 두 채를 지은 과정 전체를 적은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미술, 디자인, 건축 등에 대한 책이 많이 나오는 것도 어쩌면 선망에 그 뿌리가 있을 겁니다. 작은 선망들이 모여 우리 일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마침 90년대 초 문화유산답사를 선망의 대상으로 만들었던 유홍준 교수도 지난주 신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6권을 펴냈습니다. 이번 주말 책과 함께 골목길이나 고궁, 박물관 나들이 한번 하시지요. 벌써 봄이 여름에 쫓기고 있습니다.

김한수 출판팀장(우리 큰애)

조선일보 2011.05.21.

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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