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같은 인생 정만서(鄭萬瑞) 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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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머리(머릿말)


이 책에 실린 글들은, 경주 인근의 초당방으로 전해오는 흙 묻은 얘기들을 주워 모은 구비문학(口碑文學) 자료 가운데서, 19세기 후반을 풍미했던 골계처사인 정만서(鄭萬瑞)의 걸쭉하게 웃기는 얘기를 모아 실은 것이다.

‘초당방’은 외양간에 딸린 방으로, 농사꾼들의 집합처인 바, 짚신을 삼으며 읍내 장터에서 듣고 본 세상 견문을 나누거나, 수더분한 놀음은 물론 고약한 우스개와 어긋진 장난도 서슴없이 벌이던 민초들의 오락장인 동시에 머슴들의 삶과 애환이 한데 뒤엉킨 밀집처랄 수 있다. 선비문화에 대응되는 것을 상민문화라 한다면 초당은 그런 문화의 심지를 지켜 내린 알자리일 것이다.

건강한 웃음은 생활의 활력소인 까닭에, 소탈하게 웃으면 가슴에 응어리진 감정의 매듭까지도 풀어지게 마련이다. 정만서 얘기는 웃기는 얘기다. 우리의 정공은 정수동과 전혀 다른 사람이다. 정만서는 지금부터 170년 전의 경주사람이고 정수동은 그보다 한 세대 전의 한양사람이다.

그가 더러는 말장난을, 때로는 기지를 번득여서 술은 항상 공짜로 얻어 마셨다. 또 가진 자와 먹물[學問]을 짓까스르기도 했고 걸쭉한 신소리나 심술로써 세상을 비웃어 주기도 하였다.

상대를 계략으로 얽을 때는 옴짝달싹할 수 없게스레 외곬으로 몰아붙이는 순발력도 지녔지만 남의 계략에 옥말리거나 자기 꾀에 헛감겨들어 세인의 비난을 받은 적도 없진 않았다. 수구와 개화의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19세기, 소외된 계층으로 억눌려 살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지만 반골인 그는 야인답게 기지(奇智)와 풍자(諷刺)와 골계(滑稽)로써 어긋지게 살기를 고집하였다. 바로 거기 한말의 초당을 주름잡던 정만서의 소탈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어서 오늘날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게 됬는 바, 실재 인물과 전설적 얘기가 꼭 일치하는 지는 다소 의문이 없지 않다.

억지 웃음이나 강요하는 요즘의 TV코미디에 식상해진 형편이고 보면 자다가도 웃을 법한 정만서의 해학이야말로 깊이 있는 웃음의 질펀한 늪이 아니겠는가?

여기 실은 글은 필자가 정유산업에 종사한답시고 무람없이 헤맬 때 석유 전문지인 월간<석유협회보>를 비롯한 정기간행물에 연재했던 것을 한 데 묶어 만든 것이다.

긴 세월동안 자료 수집에 기꺼이 협조해 주신 여러 고향 어르신들과 친척, 선배, 친구 여러분, 그리고 반도체 전문가이면서도 쉬지 않고 일러스트레이션을 맡아 준 金成榮 박사에게 감사 드린다.

만약 이 하잘것없는 책자가 웃음이 메마른 현대인과, 흙냄새를 아끼고 흙내음을 그리는 이들에게 작은 웃음을 선사해 줄 수만 있다면 더 없이 고맙겠으며, 잘못이 있으면 독자들의 질정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괴로운 세상이라 하지 말고 그저 웃으며 살도록 노력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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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투리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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