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타 킨테와 롤로마리(나이제리아 방문기)
하기 좋은 말로, 사람들은 ‘피부 색깔이나 언어와 종교를 초월하는 것’이 ‘지구촌의 사랑’이라고들 얘기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건 아닌 성싶다. 사실 나는 피부 색깔과 언어가 다른 일단의 사람들을 내 알량한 선입관 때문에 턱없이 경멸한 적이 있었음을 예서 고백한다.
그건, 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시절로, 나는 그때 정유회사에서 원유 조달책임을 맡고 있었다. 파동이 나자 머지않아 산업체에 공급해야 할 기름 재고는 바닥이 날 판이었기에, 어쩌든 원유를 좀 구해 보겠답시고 별의별 산유국으로 다 돌아다닐 때의 체험담이다. 말하자면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았던’ 신세였는데, 마침 서아프리카 어느 해안에 ‘명태 뼈다귀만큼’ 연줄이 닿는 산유국이 있다길래 에멜무지로 찾아 나섰던 게다.
그 나라 사람은 모두 까마귀만큼 검고 반질거리는 피부를 지닌 니그로이고, 내가 처음 만난 유색인은 2 미터가 넘는 높직한 입국 심사대에 걸터앉은 이민국 관리였으니, 그 작자가 내 첫번 경멸의 대상이었다. 왠고하니, 그 깜둥이의 윤기 나는 뺨에 나 있는 고약스런 흉터 때문이었다.
그건 암만 봐도 칼로 일부러 그었음에 틀림없는 소름끼치는 칼자국이었다. ‘도둑의 때는 벗어도 덴둥이 때는 못 벗는다’는 속담을 통해 짐작하듯, 손톱에 할퀴었거나 예리한 칼날에 긁힌 얼굴의 상처도 평생 없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그렇다. 그 문신(文身) 같은 칼자국을 보는 순간, 난 ‘밀림에서 금방 뛰쳐나온 야수’의 갈퀴 같은 발톱에 대롱대롱 매달린 느낌에 사로잡혔다. 매우 놀란 눈으로 휘둘러본즉 모든 관리들의 까만 얼굴에 칼자국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어떤 건 빗금 둘, 어떤 건 이마에 옆줄 몇 개 식으로. 모두 각양 각색인 걸로 봐서 부족마다 정한 무늬가 있는 듯했다. 멀쩡한 얼굴에다 공공연히 칼자국을 새기는 족속이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다니. 야만인 같으니라고......
그 검은색 관리는, 갈색 눈에다 왜소한 체구의 황색인종인 나의 아래위를 이상한 눈으로 훑어보더니만, 능숙한 영어로,
“당신 말이야, 어디서 왔소이까? ”라며 심문조로 나왔다. 그 검은 친구의 유창한 영어에 또 한번 놀라, 얼핏 ‘여기가 영연방 국가였던가?’ 싶으면서도 엉겁결에,
“저, 한국에서 왔습니다.”하고 공손한 대답을 뱉고 말았다.
“무슨 볼일로 왔소이까?” 하길래 나도 조금 삐딱하게,
“관광하러 왔소이다.”라고 이번엔 꾸며댔다. 그건 만일 이 원유파동 속에 기름을 사러 왔다고 했다간, 필경 내 뺨에도 저들처럼 칼침을 줄 것만 같은 압박감이 엄습했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그 동물성 노린내를 풍기는 피부 검은 양반이, 제 옆자리 녀석과 뭐라고 뭐라고 토박이말로 시시덕거리더니,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서 여기까지 관광하러온 팔자라면 당신은 필경 부자인 모양인데, 돈 자랑 좀 해보지 그러시오?”
하며 제법 고약스레 나왔다. 겁도 겁이지만 한편으론 같잖아서,
“부자는 무슨 놈의 부자.....”라며 우물거렸더니, 그 작자는 단박 나에게 턱짓으로 한옆에 서라고 하더니만, 한 담뱃참이 지나도록 다른 사람들만 통과시키는 것이, 아마도 날 골려 주려는 투로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칼침 깨나 맞나 보다’ 싶자, 좌우지간 위기부터 탈출하고 볼 심산으로, 우리 교통순경에게 하듯 책갈피에 끼운 지폐 몇 장을 슬쩍 그 작자의 턱 높은 심사대에 올려놨더니, 어럽쇼, 이것 봐라? 당장 ‘쥐약의 효과’가 나타나는 게 아닌가. 어쨌거나 칼침은 겨우 면했으나, 본의 아니게 검은 친구 하나를 타락시킨 셈이었다. 원숭이나 다름없는 색깔의 사람이 돈맛을 알다? 어험, 어험.......
입국 수속을 어렵사리 끝내고, 손수레에다 옷가방이랑 손가방 등속을 실은 채 공항 밖 광장으로 밀고 나오려니까, 웬 맨발인 검은 친구가 내 손수레를 밀어주는 척하면서, “어디서 왔느냐? 며칠이나 묵을 작정이냐?”는 등의 시답잖은 질문으로 감기기 시작했다. 맨발인 주제에 영어를 지껄일 줄 알다니, 이게 도무지 어떤 녀석인가 싶어 돌아보니, 그 녀석 얼굴에도 칼자국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는 짓이 너무 가소로워 코대답만 퉁기는데, 녀석이 ‘쉭, 쉭’하며 휘파람 아닌 헛바람 새는 소리를 날리는가 싶자, 어디선가 금방 세 놈의 맨발패가 나타나더니 짐꾼 시늉으로 한 손씩만 밀수레에 올려놓곤, 서로들 ‘저 차를 타라’면서 어느 겨를에 한 놈씩 가방을 낚아채선 냅다 뛸 참으로 수런거렸다. 이놈들이 차를 잡아주고 푼돈 깨나 뜯으려는 건지 아니면 날도둑놈 패거린지 구별하긴 어렵지만, 그냥 뒀다가는 네 놈이 산지사방으로 달아날 조짐이기에 한국말로 버럭,
“네, 이, 날강도 같은 놈들이 누구 앞에서 까불고 있니, 엉? 저리 몬 비끼겠나?”
하며 경상도식 고함에다 태권도식 헛손질을 날렸더니, 꺼병이처럼 좍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을 다잡아 짐들을 수습하여 어찌어찌 택시를 잡아타긴 했으나, 그 맨발의 검은 친구들이 내 둘째 경멸의 대상이었다. 힘겹게 얻어 탄 택시로 도심까지 들어갔는데, 요금을 내려니까 그 운전사는 ‘달러’화로만 내 놓으란다. 왜냐고 따지기도 귀찮아서 달라는 대로 주고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공정환율과 암달러의 시세 차가 2 배가 넘는다나? 어쩐다나? 계산엔 귀신같은 사람 같으니라고. 정부나 경찰은 또 무얼 하는 곳인감?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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