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가 들고 일어날 때다
(방언사전을 위한 자료 수집)
지금 방언 제보자들과 더불어 방언도 시간과 비례해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반면 방언학자들은 일일이 전국 시군마다를 찾아다니면서 사전 편찬을 위한 방대한 양의 방언을 수집해서 정리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국립국어연구원에서 전국 방언조사란 것을 지난해(2004)부터 시작하고는 있지만 예산도 빠듯하고 인력도 넉넉잖아 해마다 몇 개 지점씩 장기계획으로 추진할 모양인데, 수삼 년 뒤까지 우리가 희망하는 방언 제보자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지조차 의문이다. 조사항목이란 것도 기본어휘에 지나지 않아 방언사전은 엄두도 못 내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보고만 있을 문제가 아니잖은가?
방언 화자의 속성상 외부 사람에게는 마음의 빗장을 잘 열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다른 지방 사람이 양복 입고 찾아가면 이중 언어로 말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다.방언조사를 한답시고 표준어나 중부방언을 쓰는 사람이 느닷없이 들이닥쳐서 이것저것을 캐물을라치면 일차적으로 배타적인 심사부터 발동하고, 조금 지나면 귀찮아서라도 표준어로 대답해버리기가 십상이다. 그런데 혈연, 지연, 학연이 이리저리 얽히게 마련인 자기 고장사람이 공통의 고향말로 물어오면, 그것이 민속자료가 되었건 방언수집이 되었건 일단 스스럼이 없으니 마음의 빗장을 열 것이고 이중 언어의 사용 빈도도 줄어들어 방언으로서의 신뢰성이 높아질 것임에 틀림없다.
각 시군에는 문화원이 있고 또 향토연구회나 향토사학회도 있으며 라이온스클럽, 로터리클럽, 각 시군이나 면단위의 노인회나 향우회 등등이 없는 곳이 없을 지경으로 많으니, 미리 말하지만 이런 각종 향토조직을 활용해서 방언이 사라지기 전에 각 지역별로 채록부터 해두자는 의견이다. 이처럼 향토관련 단체들도 좋고 자기 고장의 방언에 관심이 있는 몇몇 아마추어라도 좋다. 이런 관심 있는 인사들이 곳곳에서 들고 일어나서 자기 향토의 방언을 발굴해서 스스로 채록해 놓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분들이라면 제보자를 선정하기도 수월하고 제보자가 순수방언으로만 말씀하시도록 유도하기도 쉬움은 물론 혹시라도 이중 언어로 말할 때는, 그 신뢰성 여부를 단박에 알아차리고서 화자와의 친밀성이나 동질성을 기저에 깔고, 60년 전의 어휘로 말씀해 주십사고 어리광을 피울 수도 있을 뿐더러, 채록된 내용을 전사하고, 표준어로 고쳐 씀에 있어서도 현지 출신에 따라갈 사람은 결코 없을 터이니 그 아니 좋으랴. 자기 고장 방언의 전문가는 그 고장 출신들뿐이지 않는가 말이다. 누가 감히 현지 출신을 따라잡을 수 있으랴? 어림도 없는 얘기다.
이렇게 해서 각 시군지역별로 부록 2에 실린 다양한 분야의 자연발화내용을,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mp3 녹음기로 적어도 300시간, 많으면 600시간 정도를 채록하여, PC나 CD에 담아 놓고, 틈나는 대로 전사하되 방언학자들이 알아보기 어렵겠다 싶은 어휘나 구절 정도에만 표준어 대역을 달아 놓는다면, 나중에 그 ‘말뭉치’를 가지고 사전으로 편찬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듯하다. 사전 편찬이야 당장 하지 못하면 시간을 좀 두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방언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채록부터 해 놓자는 말씀이다.
이 글은 이런 아마추어 분들을 위하여 아마추어인 필자가 겪은 얘기를 장황할 정도로 자세하게 썼으니 조금이라도 참고가 되었으면 그런 생광이 없을 성싶다. 지금은 아마추어인 우리들이 각지에서 방언채록을 위해 당장 들고 일어날 때다. 우리의 시군별방언은 독특하여, 세계 어디에 가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것들이다. 외국의 교민사회에 일부가 남아 있다고는 해도 이미 적잖게 오염된 상태다. 그렇다면 이 자랑스럽고 유일한 지역방언을 배달겨레와 출신고장에 봉사하는 마음으로라도 수집해 둬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늦지 않았다. 유유자적하는 숨은 선비들이 ‘우리 것 찾기 운동’의 하나로 자기고장 사투리에서 풍류를 찾음직도 하지 않은가? 그분들의 동참을 호소하는 바이며, 이제는 모두가 주저하지 말고 떨치고 일어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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